삼성 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열어 위원장 내정까지의 경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재판장 정준영)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평가해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뒤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사법거래’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감시위에 참여한 외부 위원들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그룹의 준법체계 전반을 감시하겠다며 만들어진 감시위 활동이 애초 예상대로 이 부회장의 ‘형량 깎아주기’에 이용당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 탓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체로 ‘재판은 재판이고 감시위는 감시위다.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간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보였다.
김지형 감시위원장(전 대법관)은 지난 2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재판부가 양형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감시위 구성을) 제안했고 그것에 따라 감시위가 시작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판과 (감시위의 활동이) 연동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감시위는 고유의 활동 목표가 있고 해야 할 소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감시위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든 위원장으로서 삼성을 감시하는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는 감시위의 활동을 양형에 반영하는 것에 대한 시민사회 비판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뭐라 논평할 입장은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봉욱·김우진 위원 등은 대체로 ‘사법거래’ 비판에 대한 입장을 밝히길 꺼렸지만 일부 위원들은 재판부가 비판 여론을 수렴해 양형을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고계현 위원(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은 21일 “재판부가 감시위를 명분 삼아 양형에 참조하려는 부분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사법적 원칙에 부합되는지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있으니 재판부가 여론을 잘 수렴해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판단은 재판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권태선 위원(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은 “삼성이 재판을 엄정하게 받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가장 올바로 가는 길이라는 주장을 할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은 판사가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맞다”며 “재판 문제는 판사의 책임이고 판사가 책임지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경제개혁연대가 요청한 ‘감시위 참여 재고’에 대해서 현재까지 “참여를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밝힌 위원은 외부위원 6인 중 연락이 닿은 5명 가운데 아무도 없었다. 고 위원은 “애초 참여 요청을 받았을 때 감시위의 활동 취지가 반감됐다고 느끼면 언제든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면서도 “위원회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도 전에 참여를 유보하는 건 일관성 측면에서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달 초 김지형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감시위 활동이 취지에서 벗어날 경우 사퇴까지도 염두에 두고 참여를 수락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모두 감시위의 향후 활동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권 위원은 “여러 한계를 지적하는 사회 여론이 많지만, 그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준비 단계에서 위원들을 만나고 규정과 협약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신뢰가 생겼고 감시위가 아예 무의미한 역할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 위원도 “(과거 활동했던 경실련 등에서) 우려가 나온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삼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임계점에 다다랐기 때문에 이런 힘을 모아서 삼성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