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KT)는 2000년엔 국내 상장사 중 시가총액 순위 1위 기업이었다. 하지만 2002년 민영화 이후 꾸준히 주가가 약세를 보이며 이젠 업계 3위 엘지(LG)유플러스와의 시총 격차가 수천억원대까지 줄어들었다. 국내 첫 통신 사업자이자 업계 ‘맏이’였던 과거의 평판이 무색한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 내몰린 이유는 뭘까.
통신업계에 오래 몸담은 이들 사이에선 케이티를 ‘밑동 상한 고목’에 빗대는 경우가 많다. “민영화 초기에는 ‘자립’ 의지와 능력이 떨어졌고, 이후에는 ‘낙하산’ 최고경영자들이 연임을 기대하며 단기 실적에 집착한 경영을 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일반적이다. 에스케이텔레콤의 한 임원은 “요즘 케이티는 사업 방향을 잃은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케이티의 ‘추락’은 2000년대 중반께 본격화됐다. 낙하산 최고경영자 시대가 열리며, 단기 실적에 치중한 경영이 이뤄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취임한 이석채(2009년 1월~2013년 11월) 전 회장은 자산 유동화를 명분으로 부동산과 매각·임대 사업에 나서는 동시에 렌털 등 통신서비스와 상관없는 분야까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 2014년 박근혜 정부 출범 뒤 취임한 황창규 회장은 전임자가 벌여놓은 사업 정리와 인력 구조조정 등 ‘마이너스 경영’으로 회사를 더욱 망가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해관 케이티 새노조 대변인은 “이 전 회장과 황 회장 모두 통신의 공공성과 공익성에 문외한이었다. 둘 모두 연임에 성공했고, 황 회장은 연임 임기까지 마치게 됐으나, 회사 꼴은 말이 아니게 됐다”고 꼬집었다. 케이티 전·현직 임원들이 구현모 차기 최고경영자 후보에게 “구체제와 완전히 결별하라”는 요구를 쏟아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2002년 케이티 민영화 당시 한국전력의 통신사업을 담당하던 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케이티가 온전한 민간기업으로 탈바꿈하려면 3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정호 에스케이텔레콤 사장은 2017년 취임 뒤 사석에서 “우리의 주 경쟁자는 케이티가 아니라 엘지유플러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새 최고경영자에 오를 구현모 사장이 케이티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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