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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중국 투자했다 기술만 빼앗겨…외식·패션 등 분야도 다양”

등록 2020-03-29 19:17수정 2020-03-30 11:47

한·중 기술분쟁 맡은 유성원 변리사
1년에 50건씩 분쟁, 상당수 중견기업
패션·외식·화장품·환경 두드러져
“협력 빌미로 기술습득…유상증자도”
법률자문 꼼꼼히 받고 의도도 살펴야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18년 국내의 ㄱ의료기기 제조사는 중국의 한 헬스케어 기업에 자사 특허를 이전할 꿈에 부풀었다. 중국 기업은 수백만달러에 특허를 사겠다고 구두로 약속하고 연구비도 댔다. 대신 “중국에 내놓을 제품을 당장 연구·개발해야 한다”며 한국 연구진을 중국으로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중국 연구진들이 핵심기술을 학습할 동안 특허협상은 수개월째 평행선을 달렸다. 이미 중국 기업에서 받은 연구비로 연구개발자를 대거 채용한 ㄱ기업은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1년이 지나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중국 기업은 그제야 “(특허 이전을) 못 하겠다”며 일방적으로 협상을 종료했다.

‘동상이몽’. 유성원 지심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는 24일 <한겨레>와 만나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현주소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 기업은 중국 진출을 바라는데 중국 기업은 내수 시장을 내줄 생각이 없고 기술 흡수만 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10년 한-중 특허 침해 및 무효심판 소송에 뛰어든 이래 10년째 한국 기업 기술분쟁소송 대리 및 중국 진출 관련 기술 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 기업과의 협력은 자금이 충분치 않은 한국 중견·중소기업에 매력적인 선택지로 여겨진다. 현지 협력사가 있으면 낯선 중국 정부와 시장에 다리를 놔 줄 수 있고, 당장 자본이 없어도 특허기술 등 무형자산을 현금가치로 환산해 현지 협력사와 공동사업을 펼칠 수도 있어서다. 많은 기업인이 중국 합작·합자법인을 통해 기술 사용료도 받고 중국 시장도 진출하겠다 꿈꾸는 이유다. 하지만 유 변리사가 말하는 현실은 다소 냉혹하다. “안타깝게도 꼭 2∼3년이 지나면 문제가 생깁니다. 협력관계가 깨진다거나, 기술을 빼앗긴다거나, 한국 기업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합작·합자법인 주주총회에서 내린다거나 하는 방식으로요.”

유성원 변리사가 24일 서울 강남구 지심특허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lt;한겨레&gt;와 만나 한·중 기술분쟁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유성원 변리사가 24일 서울 강남구 지심특허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한·중 기술분쟁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협력 빌미로 기술학습…자본 유상증자도

가장 빈번한 방식은 유상증자를 통한 중국 기업의 의결권 늘리기다. 유 변리사는 “설립 후 2∼3년가량 연구개발협력을 하다가 자본금이 바닥나면 중국 기업 혼자 유상증자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문제는 중국 회사법상 주주총회 의결권이 자본 출자비율에 비례하기 때문에 증자가 반복될수록 한국 기업이 주요 의결사항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국내 대형 홈쇼핑업체 ㅅ사를 꼽았다. ㅅ사는 지난 2004년 중국 홈쇼핑 시장 진출을 위해 상하이미디어그룹(SMG)과 합작법인을 세웠지만 자본을 대는 상하이미디어그룹쪽이 ㅅ사를 제외한 제3자 유상증자를 반복하면서 지분이 49%에서 26.8%까지 줄어들었다. ㅅ사는 결국 2012년 지분 11%를 시세보다 낮은 502억원에 매각하고 사실상 중국 사업을 정리해야 했다.

기계부품업체 ㄹ사도 중국 협력사 유상증자로 주요 의사결정에서 배제된 사례다. ㄹ사와 함께 합자법인을 세운 중국 기업은 지난 2018년 공장 핵심 공정 암호를 요구했고 ㄹ사는 이를 거절했다. 그럼에도 중국 협력사는 주주총회에서 암호 공개를 ‘일반 의결사항’으로 상정해 ㄹ사 동의 없이 의결했다. 중국 협력사가 한 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과반 지분을 가지고 있었던데다, 일반 의결사항은 주요 의결사항보다 주주 정족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당시 합자법인은 주주총회 주요 의결사항과 일반 의결사항을 어떻게 구분할지 정관에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기간을 특정하지 않은 기술교육도 기술유출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앞서 ㄱ의료기기제조사 사례처럼 합자·합작법인 설립이나 특허이전협상을 일단 개시한 뒤 기술교육을 수시로 요구하는 방식이다. 유 변리사는 “분쟁 당사자의 계약서를 보면 ‘새 제품을 개발할 때 필요한 모든 인력과 기술노하우를 즉시 제공할 것’, ‘기술개발 난제가 생기면 연구진을 즉시 파견하고 합자·합작법인의 상주 요구를 수락할 것’ 등 독소조항이 가득하다”며 “중국 기업이 사실상 협력을 내세워 기술을 배우려 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 변리사는 “많은 한국 기업들이 이런 의도를 모르고 대수롭지 않게 연구인력을 파견하거나, ‘연구진 월급을 누가 줄지’와 같은 지엽적 문제만 연연하곤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휴대폰 주변기기 ㄷ제조사도 지난해 한 중국 기업에서 ‘합자법인을 세워 공동개발제품을 만든 뒤 화웨이, 샤오미에 팔자’는 제안을 받았다. ㄷ제조사는 중국 기업이 소득 없이 특허기술만 베껴갈 것을 우려해 합작법인 대신 특허 로열티(사용료)를 내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중국 기업은 수개월 간 협상을 끌더니 제안을 스스로 거둬들였다. 유 변리사는 “사실상 ㄷ제조사 기술만 공짜로 배워 가려 했던 의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외식·패션부터 반도체까지

중국 현지 기업들의 이런 ‘특허 사냥’ 뒤엔 중국 정부의 암묵적 지원도 있다는 게 유 변리사의 생각이다. 그는 “중국 계약법을 보면 대체로 기술제공자보다 기술습득자 권리 옹호에 훨씬 더 유리하게끔 법률이 구성돼 있다”며 “이 때문에 기술을 제공한 기업이 중국에 내놓은 신제품에 권리를 전혀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했다.

예를 들어 지난 2004년 중국 최고인민법원이 내놓은 ‘기술 계약 분쟁의 재판에서 법의 적용에 관한 해석’ 10조를 보면 △기술습득자가 관련 기술을 활용해 시장에 진출하거나 △관련 기술을 토대로 새로운 연구개발 및 개량기술을 사용하거나 △지식재산권 유효성에 이의를 제기할 때, 기술제공자가 이를 막을 수 없다.

한-중 기술유출 분쟁은 최근 외식, 화장품, 패션 분야에서 도드라진다. 환경, 피부미용, 임플란트, 의료기기 등 헬스케어 시장과 반도체 소재·장비 분야에서도 분쟁 사례가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유 변리사는 “중국의 공격적인 기술 도입 흐름은 2005년부터 시작돼 12차 5개년 계획을 내놓은 2010년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며 “기술이전에 인센티브를 주고 지식재산권 보유를 활성화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1년에 50건이 넘는 한-중 기술분쟁 사건을 의뢰받는다며 “기술력을 갖췄지만 자금이 충분치 않은 중견기업들이 분쟁 당사자로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법률 자문 꼼꼼히, 방심은 금물

그럼에도 내수 시장이 작은 한국 기업 특성상 중국 진출은 무시하기 어려운 선택지다. 유 변리사는 현지 법률과 관련된 자문을 꼼꼼히 받을 것을 권했다. 그는 “돈이 없는 한국 기업들은 중국 기업이 법률비용 대면 좋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상 계약서 작성, 검토, 합작법인 정관 설정에 관여를 못 한다는 의미”라며 “양쪽이 동등하게 법률대리인을 선임하는 게 제일 좋고 그게 안 된다면 중국 외상투자법을 잘 아는 전문가에게 자문이라도 꼭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엔 중국 진출 관련 법률자문시장이 커지면서 중견·중소기업도 비교적 싼 값에 자문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는 이외에도 정관 주요 의결사항과 일반 의결사항, 정족수, 주주총회 구성 요건 등을 세세하게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만일 도중에라도 기술유출의 낌새를 눈치챈다면 계약을 그만두는 편이 낫다. 위생용품 업체 ㄴ사는 최근 코로나19를 계기로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 했다가 위생당국의 까다로운 허가 조건을 보고 진출 계획을 접었다. 제품 핵심기술과 조성비를 요구하는 데다 중국 현지 기업의 안정성 보증까지 받으라고 해서다. 유 변리사는 “계약을 진행하던 중이었더라도 ‘이 분야는 명확하게 외국 기업 진출을 방해하는구나’ 하는 영역이 있으면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은 일종의 ‘야매’가 많았습니다. 어느 공산당 간부를 통하자거나, 계약서보다는 사람을 믿는다거나 하는 식이었죠. 이젠 중국도 법으로 다퉈야 하는 시기가 됐습니다. 기업이 스스로 방패를 잘 챙겨야 합니다.” 그의 마지막 충고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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