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자금난에 빠진 두산중공업이 독자생존을 모색한다. 두산그룹은 중공업 사업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을 포함한 총수일가 특수관계인 32명 및 대주주가 참여하는 유상증자와 자산매각 등을 통해 3조원의 유동성을 조달하기로 했다. 채권단은 이런 내용의 자구안을 수용하며 8천억원의 자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에 두산중공업 재무구조개선계획(자구안)을 제출했던 두산그룹은 27일, 그동안 채권단과 수정·보완 논의를 거쳐 최종 자구안을 확정해 채권단에 제출했다. 두산 쪽은 “최종안에 자산매각, 제반 비용 축소 등 자구노력을 통해 3조원 이상을 확보해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조기 경영 정상화를 꾀할 계획을 담았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이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서고 최대주주이자 모기업 ㈜두산(지분율 33.8%, 2019년 말 기준)이 이 증자에 참여한다. 여기에다 박정원·박용만 회장(각 0.1%) 등 두산중공업 지분을 보유한 총수 일가도 사재를 내어 증자에 참여한다. 또 대주주는 배당과 상여금을 받지 않고 급여를 대폭 반납하기로 했다. 다만 두산 쪽은 증자 규모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두산 쪽은 “3조원 유동성 마련을 위해 매각 대상 자산의 세부 내역은 자구안에 넣었으나 증자·자산매각의 구체적인 내용은 향후 이사회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채권단-두산 협상에서 이목이 쏠렸던 대목은 대주주 고통분담 및 재무구조 개선 외에도 두산(모회사)-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자회사)-두산밥캣(손자회사)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 격변이 일어날 것인지 여부였다. 기업가치가 높은 ‘알짜’ 회사인 인프라코어와 밥캣을 떼어내 분리하고, 자연스럽게 두산중공업과 두산건설(중공업이 지분 100%를 가진 완전자회사)은 채권단을 거쳐 제3자에 매각하는 방안에 촉각이 쏠렸다. 하지만 채권단은 이날 “중공업의 독자생존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사업개편 방향”이라고 최종 자구안을 평가했다. 중공업 매각이나 순환 출자구조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산 쪽이 최종 자구안에서 독자생존 회생을 위한 두 주력사업 축으로 내건 분야는 대형 가스터빈 발전사업과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확대다. 두산은 “두산중공업은 미래 고부가가치 혁신기술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하고 가스터빈 발전사업과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사업 재편의 큰 축으로 세웠다”고 밝혔다.
앞길이 녹록지만은 않다.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이 지난달 말부터 두산중공업에 이미 1조6천억원을 쏟아부었지만, 벌써 바닥을 드러낸 상태다. 두산이 최종 자구안을 제출한 이날 산업은행은 “5월 초 신주인수권부사채(BW·약 5천억원) 상환을 위한 추가자금 8천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발전시장 회복이 지연되면 가스터빈 발전사업을 통한 회생도 불확실성에 빠져들고 극심한 자금난이 계속 이어질 공산도 크다. 당장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두산중공업의 차입금 규모는 4조2천억원이다. 채권단은 “시장조달 기능 회복이 어려울 경우 추가 지원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날부터 채권단과 두산은 독자생존을 향한 험난한 여정에 들어섰다.
조계완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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