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자동차 시장을 재편할 것으로 기대되는 전기차를 중심으로 배터리-원재료-완성차 업체간 수직·수평적 합종 연횡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최근 한 달 여 동안 전기차용 배터리를 만들고 있는 삼성·엘지(LG)·에스케이(SK)의 총수들을 연이어 만나는 것은 전기차 업계 내의 합종 연횡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업계는 바라본다.
전기차 업계는 오는 7일 정 수석부회장과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 회동 이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앞서 삼성에스디아이(SDI) 천안공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월13일)을, 엘지(LG)화학 오창공장에서 구광모 엘지그룹 회장(6월22일)을 각각 만난 정 부회장이 최 회장과 만난 뒤에 조만간 배터리 생태계의 판도를 뒤흔들만한 ‘전략’을 내놓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계에선 ‘총수 연쇄회동’ 후 정부도 참여해 5자 합동(정부·현대기아차·삼성·엘지·에스케이) 전기차·배터리 산업과 관련 공동 연구개발 협력 방안 등을 담은 거대 프로젝트 합의안이 도출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판이 ‘배터리 생태계’ 전반으로 커지는 셈이다.
이미 배터리 3사는 전방에 있는 전기 완성차 업계뿐 아니라 후방(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질 등)의 원재료 및 소재 공급업체들과 ‘원재료 동맹’을 짜고 있다. 엘지화학의 원재료 대표 합작 파트너는 배터리용 음극재와 양극재를 생산하는 포스코케미칼이다. 포스코케미칼은 지난 1월엔 엘지화학과 1조8533억원 규모의 양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일본의 히타치, 미쓰비시도 엘지화학의 원재료 거래선이다. 삼성에스디아이는 유미코아·에코프로·아사히·상신이디피(EDP)·파워로직스 등과 손을 잡고 있고,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유미코아·에코프로·디엔피(DNP·일본)·인지컨트롤스·덕양산업 등과 관계를 두텁게 형성하고 있다.
배터리 3사가 원재료 공급 업체와 ‘동맹’ 수준의 관계를 맺는 이유는 원재료 품질이 배터리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경쟁력은 △높은 에너지 집적도를 활용한 긴 주행거리 확보 △장기 수명인 터라, 원재료의 품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아가 배터리팩에 장착되는 냉각시스템 등 각종 제어장치도 전기차 성능뿐 아니라 차량 디자인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 최종 수요처인 완성차 업체의 다양한 주문에 맞춰 유연한 대응을 위해선 배터리 제조업체와 원재료 공급업체 간의 ‘협력’은 필수이다.
국외 업체들과의 협력 체제 구축도 활발하다. 엘지화학은 중국지리자동차 및 지엠(GM)과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지분 50대 50)을 세웠고, 삼성에스디아이는 베엠베(BMW)·폴크스바겐 등을 납품처로 두고 있다. 다임러에 배터리를 공급해온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중국 베이징기차와 조인트벤처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또 3사 모두 주요 해외 현지공장을 중국·미국·동유럽에 두고 있다.
수주 상황 및 제품 공급가격은 철저히 ‘영업비밀’에 부쳐져 있다. 배터리3사의 1분기 정기보고서는 하나같이 “당사 배터리 사업에서 공급가격 및 수주 세부내용은 영업에 현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공시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초기 시장다툼 속에 소송전도 불붙고 있다. 엘지화학은 지난해부터 몇 차례에 걸쳐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리튬이온 배터리 셀 관련 영업비밀 및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고 “에스케이 제품의 미국시장 수입을 금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기차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놓고 전략적 제휴와 동맹 맺기만큼이나 경쟁사에 대한 견제와 공격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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