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산업·재계

“흐린 화면에 숨은 ‘범인 얼굴’ 복원 기술로 세계 제패했어요”

등록 2020-07-22 19:10수정 2020-07-23 02:38

[짬]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정제창 교수
정제창 교수가 연구실에 있는 대형 티브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정제창 교수가 연구실에 있는 대형 티브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정제창(63)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1991년부터 4년간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고화질 에이치디(HD) 티브이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 기간 그가 개발해 국제표준이 된 원천기술은 50건이 넘는다. 1995년 한양대로 옮기고 난 뒤까지 합하면 80건을 웃돈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 국제표준 원천기술은 제가 가장 많이 개발했을 겁니다. 제가 만든 동영상 압축기술을 전 세계 디지털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등 모든 영상기기에서 쓰고 있어요. 삼성전자가 제 기술 특허권으로 해외 제조사 로열티로만 수천억 원을 벌었죠.”

지난달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적 권위의 ‘시브이피아르/엔타이어(CVPR/NTIRE) 2020 학술대회’ 실사영상 잡음제거 챌린지에서 2년 연속 우승한 정 교수를 지난 17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가 유송현·박범준 연구원과 팀을 꾸려 출전한 시애틀 대회에는 전 세계에서 22개팀(250명)이 참여했다. “영상처리 분야의 올림픽이죠. 인공지능 기술로 영상에 섞인 미세한 먼지나 안개 같은 노이즈를 제거하는 기술을 겨뤘어요. 지난 7년간 인공지능 기술을 축적해 우리 나름의 적절한 딥러닝(심층학습) 방법론을 만든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죠. 8년 전에 캐나다인 알렉스가 인공지능을 써서 영상분류 챌린지에서 우승한 뒤로 영상처리 분야도 인공지능 시대가 됐거든요.”

그가 복원한 깨끗하고 선명한 실사영상은 산업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폐쇄회로 티브이로 범인 얼굴을 잡아도 영상 화질이 떨어지면 식별이 잘 안 되잖아요? 스마트폰 사진을 키우면 뭉개지고요. 이런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죠. 의료 진단에 쓰면 의사 오진율을 줄이고 공장의 불량품 진단도 개선할 수 있고요.” 그는 이미 대기업·중소기업과 각각 인공지능을 활용한 영상처리 공동연구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 의료계 쪽과도 협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인공지능 기술력을 궁금해하자 그는 “미국은 물론 중국·일본에 견줘도 한 발짝 뒤처져 있다”고 했다. “미국 기업들이 인공지능 연구를 초기에 선도한 캐나다 연구자들을 스카우트해 이 분야 연구를 주도하고 있어요.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이 대표적이죠. 이들은 인공지능 플랫폼을 만들어 원천기술을 공개해 전 세계인 누구나 쉽게 응용하도록 하고 있어요. 중국은 워낙 인구가 많아 데이터가 풍부한 덕에 인공지능 연구도 유리해요. 사람도 어려서 보고 들은 게 많으면 빨리 배우듯 인공지능도 학습할 수 있는 양질의 데이터가 중요해요. 고성능하드웨어도 필요하고요.”

‘실사영상 잡음제거 챌린지’ 2연패
전 세계 22개팀 ‘영상처리 올림픽’
“인공지능 기술로 미세먼지 등 제거”

삼성전자 시절 원천기술 50여건 개발
소송으로 ‘직무발명 보상금’ 받아내
“회사의 개발 성과 독점은 불공정”

그는 2014년 소송을 통해 삼성전자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직무발명 보상금’을 받아내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그가 자신의 특허발명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만이었다. 2012년 1심 재판부는 ‘회사는 정 교수에게 6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년이 흘러 정 교수와 회사는 항소심 강제조정을 받아들여 ‘보상금’ 합의를 봤다. 액수는 밝히는 않는 조건이었다.

“소송한다고 하자 주변에서 다 말렸어요.” 그런데 왜? “삼성이 제 기술로 막대한 액수의 로열티를 받았는데 발명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고 경영성과로만 포장하더군요. 연구자가 밤새 개발한 성과를 회사가 고스란히 차지하는 게 불공정하다고 생각했어요.” 왜 법원 조정을 받아들였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1심만 3년 가까이 걸렸어요. 여러 면에서 많이 힘들었죠. 삼성 쪽에서도 너무 길게 가면 큰 이슈가 되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해 합의한 것 같아요.”

쉽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보람도 적지 않았단다. “제 소송을 계기로 대기업들이 ‘직무발명 보상 규정’을 크게 개선했다고 해요. 연말에 핵심기술 개발자에게 주는 파격적인 상도 만들고요. 운동선수나 연예인을 보세요.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낸 만큼 보상받잖아요. 적절한 보상은 회사에도 도움이 됩니다. 제 소송의 1심 재판부는 직무발명 보상액을 수익의 10% 정도로 봤어요. 저도 그 정도의 보상은 필요하다고 봐요.”

서울대 전자공학과 76학번인 정 교수는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신호처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8년 전엔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에도 뽑혔다. 그는 1995년 눈앞에 보이는 삼성전자 임원 대신 대학교수를 택했다. “고화질 티브이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장차 원천기술로 로열티도 많이 들어올 것이니 주변에서는 조만간 임원이 될 거라고 했죠. 그런데 그때 임원들을 보니 밑에 직원들이 100명이나 돼 연구개발보다는 수시로 팀원들과 회식하고 때로는 육두문자로 부하들을 깨면서 조직관리에 힘을 쏟더군요. 저는 끝까지 연구개발에만 전념하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정제창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정제창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그의 연구실 장식장에는 국가 훈장과 과학기술자상을 비롯해 학생들의 강의평가 점수가 높은 교수에게 주는 상패도 7개나 보였다. “학생들의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수업에서 질문을 많이 던지고 생각할 시간을 많이 줍니다. 토론도 많이 하고요.” 한국의 과학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문제가 많아요. 창의성 키우기보다 시험점수 잘 받게 하는데 치우쳐 있어요. 최근 10년 새 신입생들의 학업능력 저하를 피부로 느낍니다. 같은 걸 가르쳐도 잘 따라오질 못해요. 중·고교에서 얕게 배우는 데다 점수 따는 방법만 신경 쓴 결과라고 봅니다.”

그는 8개 외국어를 하는 ‘언어 능력자’이기도 하다. “여행할 때 그 나라 역사와 문화를 더 이해하고 현지인들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언어마다 두 달 정도 학원에 다니며 기초를 배운 뒤 틈틈이 시디나 책으로 익혔어요. 일본어 원서는 몇 권을 번역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고 중국어와 스페인어는 편하게 대화할 수 있어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도 현지 여행에 꽤 도움이 될 정도로 해요. 국제 학회에 자주 참석해 자연스럽게 여행을 많이 했는데, 여행은 제가 연구자로서 살아가는 데 큰 활력소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삼성전자 인사 쇄신은 없었다 1.

삼성전자 인사 쇄신은 없었다

‘1년 400잔’ 커피값 새해에 또 오르나…원두 선물 가격 33% 폭등 2.

‘1년 400잔’ 커피값 새해에 또 오르나…원두 선물 가격 33% 폭등

과세 준비 미비하다고 가상자산 과세 2년 더 유예하자는 정부·여당 3.

과세 준비 미비하다고 가상자산 과세 2년 더 유예하자는 정부·여당

‘가전 구독 서비스’ 뛰어든 삼성…1조 매출 달성한 LG에 맞불 4.

‘가전 구독 서비스’ 뛰어든 삼성…1조 매출 달성한 LG에 맞불

우울한 내수, 불안한 트럼프…국내기업 절반 “내년 긴축” 5.

우울한 내수, 불안한 트럼프…국내기업 절반 “내년 긴축”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