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시운전 준비 단계에 있는 2만4천TEU 컨테이너선 ‘HMM(에이치엠엠) 상트페테르부르크호’의 뱃머리. HMM 제공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배.
지난 1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맞닥뜨린 세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선 ‘에이치엠엠(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의 첫인상이었다. 비가 내려 서늘한 날씨였으나 시운전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 중인 수백명의 노동자들은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에이치엠엠(옛 현대상선)의 2만4천TEU급(가로 약 6m 컨테이너를 2만4천개 실을 수 있는 규모) 컨테이너선 12척 중 마지막 배인 상트페테르부르크호는 선박 길이만 약 400m. 뱃머리에서 꼬리까지 길이가 에펠탑보다 100m가 더 길다. 폭은 61m, 높이는 33.2m로, 갑판 넓이는 축구장 4배를 넘는다.
지난 1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시운전 준비 단계에 있는 2만4천TEU 컨테이너선 ‘HMM(에이치엠엠) 상트페테르부르크호’. HMM 제공
배를 둘러보기 위해 배꼬리 부분 아래층부터 15층가량을 오르내리며 뱃머리까지 걸어가는 데만 20분 가까이 걸렸다. 조타실을 나와 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을 때에야 간신히 배의 끝과 끝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 컨테이너선인 만큼 엔진룸과 황산화물 저감장치(스크러버) 등의 주요 장치의 규모도 압도적이었다. 엔진룸 중심에 있는 11기통의 거대한 엔진은 배를 최대 22.5노트(시속 41.7㎞) 속도로 운항할 수 있도록 추진력을 만든다. 큰 원통 형태로 지름만 6.5m 되는 스크러버는 3개가 배꼬리 부분에 우뚝 서 있다. 스크러버는 엔진과 발전기에서 발생하는 배기가스의 황산화물을 바닷물로 세척해 바다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최소화하는 장치다. 김경하 삼성중공업 과장은 “조만간 대한해협을 시운전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 95%가량 공정이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에이치엠엠에 이 배를 다음달 11일께 인도할 예정이다.
2010년대 글로벌 해운시장의 흐름은 규모의 경제 확보를 위한 ‘선박의 대형화’였다. 치열한 운임 경쟁 때문이다. 에이치엠엠은 이 추세에 뒤처져있었다. 지난 4월 2만4천TEU급 선박을 처음 보유하기 전까지는 6년 전에 도입한 1만3천TEU 선박이 가장 큰 배였다. 에이치엠엠 관계자는 “2만4천TEU 초대형선은 유럽을 오가는 평균 1만5천TEU선형에 비해 약 15% 운항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터 적용된 환경규제가 ‘전화위복’이 되기도 했다. 초대형선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그 덕에 스크러버 등을 미리 갖추고 운항을 시작할 수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초대형선을 앞세운 ‘규모의 경제’ 전략이 에이치엠엠의 정상화 ‘원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에이치엠엠은 2분기(4~6월) 실적에서 2015년 1분기 이후 21분기만에 흑자전환했다고 12일 공시했다. 2016년 8월 당시 현대상선의 대주주가 산업은행으로 바뀐 뒤 맞이한 첫 흑자전환이라는 점에서도 뜻깊다. 매출은 지난해 2분기(1조3970억원)와 비슷한 1조3751억원이었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197억원→1387억원, 당기순이익은 -2007억원→281억원으로 각각 개선됐다.
에이치엠엠이 2분기부터 초대형선을 투입한 것과 함께 3대 해운 동맹 ‘디 얼라이언스’에 가입하며 물동량 확보와 항로 효율화 등에 도움을 얻은 것도 보탬이 됐다. 지금껏 투입한 초대형선 9척 중 7척이 ‘만선’이었다. 해운업계 전반적으로는 코로나19로 컨테이너선에 실리는 화물의 양이 줄면서 전망이 어두웠지만, 업계가 ‘치킨게임’을 피하고 공급을 줄이면서 운임이 2분기에 약 20% 오른 데다 저유가로 비용을 줄인 영향도 있었다.
2021년이면 에이치엠엠의 1만TEU급 이상 초대형선 비율은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글로벌 1·2위 선사 머스크와 엠에스시(MSC)는 이 비율이 20% 수준이다. 에이치엠엠 관계자는 “에이치엠엠은 적재능력 기준 전 세계 8위 선사로 도약하면서 작지만 강한 회사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거제/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