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동통신사에 아이폰 광고와 무상수리 비용을 떠넘기는 등 ‘갑질’을 한 혐의를 받던 애플코리아(애플)가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한 끝에 기존 아이폰 사용자에게 수리비·보험료 10%를 할인해주는 등 총 1000억원 규모의 상생지원안을 제시했다.
공정위는 24일 애플과 협의해 마련한 거래상 지위 남용 관련 잠정 동의의결안(자진 시정안)을 공개하고 40일 동안 이 안에 대한 이해관계인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애플은 자진시정안에서 1000억원 규모의 상생지원안을 제시했다. 이 금액은 △소비자 편익 증대(250억원)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제조업 연구개발(R&D) 지원센터 설립(400억원) △공교육 분야 디지털 교육 지원(100억원) △개발자(디벨로퍼) 아카데미를 통한 미래 인재 양성(250억원) 등에 쓰인다. 우선, 기존 아이폰 사용자에게는 디스플레이, 배터리, 기기 전체 수리 등 유상수리 비용을 10% 할인해준다. 보험상품인 애플케어 플러스(AppleCare+)에도 10% 할인을 적용한다. 애플케어 플러스나 애플케어를 이미 구매한 아이폰 사용자가 요청하면 구매 금액의 10%를 환급해준다. 소비자 편익 증대에 투입 편성한 250억원이 소진될 때까지 이어간다. 1년 정도 뒤에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은 또 400억원을 들여 국내 중소기업의 스마트 제조업 역량 강화를 위한 R&D(연구개발) 지원센터를 설립해 운영(최소 3년)하고, 중소기업이 스마트 공정 최신 장비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교육과 협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개소 시점과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동의의결 절차가 별 탈 없이 진행되면 내년께 센터가 개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통신기술(ICT) 인재 양성을 위해 연간 약 200명의 학생에게 교육 프로그램(9개월)을 제공하는 개발자 아카데미 운영에도 250억원을 투입한다. 아카데미에서는 학생들에게 소프트웨어 개발, 비즈니스, 마케팅, 디자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사용자 이용경험(UX) 등을 가르치고 글로벌 회사 네트워킹, 진로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개발자 아카데미는 애플이 이미 이탈리아 나폴리,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에서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교육 지원(100억원)은 사회적 기업, 임팩트 투자기관과 협업을 통해 혁신학교·특수학교·다문화가정 아동 등 교육 사각지대 학생들과 공공시설(도서관·과학관 등)에 디지털 기기와 콘텐츠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애플은 ‘갑질’ 논란을 일으킨 이통사 광고기금 등에 대한 시정안도 내놨다. 광고기금은 공동의 이익 추구와 파트너십을 위한 것임을 명확히 하고 광고 비용 ‘분담 원칙’을 계약서에 명시하기로 했다. 이통사 광고기금 중 일부는 이통사에 자율권을 주고 광고계획, 광고 승인과정의 협의 절차를 개선한다. 애플과 이통사가 합의하면 광고 외 다른 마케팅을 허용한다. 다만 이통사의 애플 제품 광고비 부담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송상민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이통사의 광고비 부담이 줄어드는 부분이 있겠으나 전체가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애플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간섭하던 것에서 애플과 이통사가 광고비를 상호협의하는 형태로 개선한다”고 설명했다.
무상 수리 촉진서비스 관련 비용을 이통사가 부담하도록 하는 조항과 일방적인 계약해지권 조항은 삭제했다. 최소 보조금은 관련 법령상 이통사 요금할인 금액에 상응하도록 조정하고 보조금을 변경해야 하는 사정이 생기면 서로 협의하는 절차를 도입했다. 과거 애플은 이통사가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아이폰 판매량을 늘렸으나, 최근에는 보조금을 적게 책정했다. 앞으로는 이통사 요금할인액만큼의 보조금이 지급되게 된다. 이통사가 최소 보조금 조항을 집행하지 않았을 때 적립하는 사업발전기금(BDF) 조항은 삭제했다.
애플이 현재 절차를 밟고 있는 자진 시정안(동의의결)은 조사 대상 사업자가 제시한 자진 시정방안을 공정위가 타당하다고 인정하면 법 위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건을 종결짓는 제도다. 공정위는 애플이 마련한 자진시정안이 불공정 거래행위를 개선하고 중소사업자와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소비자를 포함한 이해관계인 의견 수렴 절차에 돌입했다. 공정위는 10월 3일까지 이해관계인 의견을 들어 자진시정안에 반영한 뒤 전원회의에 이 안을 올릴 계획이다. 전원회의 심의 후에 의결되면 동의의결이 최종 확정된다. 만약 전원회의에서 애플의 자진시정방안이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면 동의의결 절차는 무산되고 제재 심의가 다시 시작된다.
앞서 공정위는 애플이 무상수리 서비스 관련 비용을 이통사에 떠넘기고 보조금 지급과 광고 활동에 간섭하는 등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2018년 4월 애플에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성격)를 발송했다. 그동안 3차례 전원회의를 열어 이 내용을 심의했고, 애플은 3차 심의 이후인 2019년 6월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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