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밤 10시, 대한항공 KE9037편은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 오하이오주의 소도시 콜럼버스 리켄베커 공항으로 출발했다. 이 항공편은 기존 보잉777-300ER 여객기 내부의 좌석을 떼어 내 화물기로 개조한 국내 첫 사례로 눈길을 끌었다. 좌석이 없어진 객실은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의류 상자들이 채웠다. 콜럼버스는 미국 의류·유통기업의 물류센터가 모여 있는 새로운 화물 거점지로, 전 세계 항공사들이 화물 수요를 선점하기 위한 눈독을 들이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향후 동남아시아 화물 노선망과 연계해 자동차·전자 부품, 의류 등의 화물 수요를 확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여객이 사라진 자리, 10년 가까이 침체됐던 항공화물 시장은 코로나19로 반전을 맞으면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 중이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의 ‘불황 속 효자’로 주목 받은 항공화물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항공사에서 화주에게 물건을 받아 비행기에 싣기까지는 통상 2~3시간이 걸린다. 화물을 받으면 수량과 포장 상태 등을 점검한 뒤, 수출 신고 수리 여부를 확인하고 중량을 잰다. 이어 엑스레이 등으로 보안 검색을 한 뒤, 일반화물과 특수화물 등을 구분해 창고 안에서 화물 장치를 한다. 이어 항공기에 화물을 싣는다. 화물을 실을 땐 로드 마스터(화물탑재관리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화물의 부피와 중량 등을 따져 균형을 맞추는 업무가 이 일의 핵심이다. 로드 마스터는 대한항공 150명, 아시아나항공에는 80여명이 근무 중이다. 아시아나항공 화물본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방호복 같은 상대적으로 부피가 큰 화물이 늘면서 항공기의 무게균형을 맞추는 업무 처리가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이렇게 짐이 실린 화물기는 하루 평균 대한항공은 22편, 아시아나항공은 13.4편이 뜬다.
국내 항공화물의 역사는 수출 산업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1960년대엔 가발, 1970~80년대 모피류와 전자제품, 1990~2000년대 전자제품과 의류 등 패션 제품이 항공화물 시장을 주도해왔다. 2000년대 이후에는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 고부가가치 제품이 주종을 이뤘다. 최근에는 의약품, 연어나 체리 등 신선화물 품목과 전자상거래 및 해외직구의 활성화로 개인 소비재 비중이 크게 증가 추세다. 한국무역협회의 2019년 국내 수출입 현황을 보면, 항공 수출입 비중은 물량 기준으로 0.2%(항만 비중 99.8%)에 불과하지만 금액 기준으로는 30%에 이른다.
항공화물은 상반기 국내 대형항공사(FSC)가 ‘깜짝 흑자’를 내게 된 주역이 되면서 새삼 주목을 받았다. 전 세계 여객 항공사 중 화물기 비중이 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 셈이었다. 국제선 여객기가 멈춰서면서 여객기 화물칸(벨리 카고) 운송 공백이 지속되자 화물기를 보유한 항공사로 물량이 집중되면서다. 평시에는 항공화물 물량의 40~50%는 여객기 화물칸으로 이용된 탓에, 코로나19 확산으로 여객기 공급이 줄면서 운임이 확 뛰었다. 항공화물 운임은 지난 5월 고점을 찍은 뒤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8월 항공화물 운임은 지난해 8월과 견줘 아시아~북미 노선은 67%, 아시아~유럽 노선은 27% 더 높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국내 항공사들에게 화물은 ‘애물단지’였다. 2010년 정점을 찍은 항공화물 업황이 유럽 금융시장 불안,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성장이 둔화하면서다. 2004~2009년 6년 연속 전 세계 항공화물 수송 1위를 지키던 대한항공은 화물 부문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화물기 대수를 줄였다. 2016년까지만 하더라도 화물기를 31대 보유했다가 매각해 현재는 23대를 보유 중이다. 그럼에도 전체 보유 항공기 중 화물기 비중은 대한항공(13.6%)과 아시아나항공(14.1%) 등 국적 항공사들이 외국의 주요 여객 항공사인 카타르항공(12.2%), 케세이퍼시픽(10.4%), 루프트한자(2.5%)보다 뒤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아메리칸항공이 35년 만에 화물기 운영을 재개했고, 화물기 보유량 세계 4위인 에미레이트항공은 4월 초 화물기 취항지역을 50곳으로 늘렸고 7월에는 100곳으로 확대하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하반기에도 항공화물 시장은 호조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화물 수요 규모는 유지될 것 같다“면서 “상반기에 마스크, 방호복 등 코로나19 관련 물품 주도 수요가 컸다면 하반기는 전자제품, 전자상거래 등 일반 소비재 물품 수요로 전망한다”고 내다봤다. 대한항공 쪽은 “하반기에도 방역 물자와 진단키트 등 의료용품과 더불어 ‘비대면’ 생활에 따라 증가한 전자상거래 물량이 늘어날 것 같다”며 “코로나 백신이 보급된다면 백신 수송 수요도 더해져 화물수요 강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_______
판다 한쌍, 온도·진동까지 신경…186톤 가스터빈, 최대중량 기네스 등재
이색 화물엔 뭐가 있을까
스마트폰이나 진단키트만 비행기로 옮겨지는 건 아니다. 경주마와 발전소 터빈, 고가의 예술작품 등과 같은 특수화물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까다로운 손님들이다. 귀한 동물 손님들은 때로 ‘보디가드’들과 함께 한다.
지난 2016년 3월3일 시진핑 중국 주석이 한국 정부에 선물한 판다 한쌍은 사육사와 수의사를 대한항공 화물칸에 대동한 채 입국했다. 이들은 20~30분 간격으로 판다 상태를 점검했다. 화물칸 온도는 판다에게 쾌적한 18도에 맞췄다. 이동하면서 진동이 발생해 판다들에게 스트레스가 생길 것을 염려해 화물기에서 내린 뒤에도 무진동 특수 차량에 실어 에버랜드까지 수송했다.
이듬해 6월엔 불법포획된 지 20년 만에 제주로 돌아가게 된 남방큰돌고래 두 마리가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화물기를 이용했다. 이 때에도 사육사와 수의사가 함께했다. 살아있는 동물 운송은 항공기에 장착된 온도조절과 환기 장치로 기내에 적절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덕택에 항공운송이 여타 운송 수단에 견줘 가장 안전한 수송 방편이라는 게 대한항공 쪽 설명이다.
2017년 1월, 조류 인플루엔자 탓에 발생한 ‘계란 대란’ 때에는 대한항공이 미국에서 한번에 계란 100톤을 화물기에 싣고 들여왔다. 당시 혹한기 외부온도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중 비닐로 싸고, 화물칸 온도를 8~13도로 맞춰 신선도를 유지했다. 루브르나 오르세 미술관의 작품이 국내로 올 땐 작품을 이중 밀봉한 뒤, 기내 항온·항습 조건을 맞춘다. 작품 가치가 큰 경우에는 더러 큐레이터도 동승해 운송 과정을 직접 관찰하기도 한다.
186톤이나 되는 가스터빈 발전기가 항공기로 옮겨지기도 했다. 지난 2009년 지에스(GS)건설은 당시 우크라이나의 안토노프 항공사를 통해 발전플랜트 기자재인 가스터빈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실어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으로 옮겼다. 아르메니아가 해발 900m 고지대인 탓에 해상운송이 불가능해 항공운송 밖에 방법이 없었던 탓이다. 당시 항공기가 운반한 세계 최대중량의 화물로 기네스에 등재됐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