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27일 LG필립스LCD 파주공장 현장에서 구본준 당시 LG필립스 LCD 부회장(사진 가운데)이 구본무 LG 회장에게 파주공장 건설현황을 놓고 설명하고 있다. LG 제공
구본준(69) 엘지(LG)그룹 고문(전 LG 부회장)이 LG상사와 LG하우시스, 판토스 등을 거느리고 LG그룹에서 이달 말께 계열 분리한다. 상사부문을 중심으로 독자 경영체제를 구축하기로 최종 결정한 셈이다. 구 고문은 고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이며, 고 구본무 LG 회장의 동생이다. 구광모 LG 회장이 2018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로 LG 안팎에서는 구 고문의 계열 분리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16일 LG 쪽은 “이달말에 ㈜LG 이사회가 개최된다”고 말했다. 이사회를 열어 계열분리를 위한 구 고문의 지분 변동 등을 담은 안건을 의결한다는 뜻이다. ㈜LG와 함께 LG상사·LG하우시스·판토스 등도 비슷한 시점에 각각 이사회를 열어 계열 분리안을 결정할 것으로 전해진다. 구 고문은 LG 지주사인 ㈜LG 지분 7.72%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 가치는 약 1조원 정도로, 구 고문은 이 지분을 활용해 LG상사와 LG하우시스 등의 지분을 인수해 독립할 것으로 보인다. 구광모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LG상사의 물류 자회사인 판토스 지분 19.9%도 매각하는 등 계열 분리 사전작업을 해왔다.
구 고문이 상사부문을 중심으로 한 계열분리에 나서는 것은 LG그룹의 주력사업인 전자·화학을 구광모 회장체제에 온전히 보존하면서 지배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2018년 구광모 회장 취임 직후에는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등 전자 계열의 분리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계열 분리 대상 계열사에서 최종 제외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주회사인 ㈜LG는 LG상사 지분 25%, LG하우시스 지분 34%를 쥔 최대 주주다. LG상사는 그룹의 해외 물류를 맡는 판토스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LG전자와 LG화학 등 주요 고객과 판토스 사이의 높은 내부거래 비율(60%)에 따른 자회사 일감몰아주기 문제도 이번 계열분리로 자연스럽게 해결될 전망이다.
LG하우시스는 2009년 LG화학의 산업재 사업 부문을 분할해 만든 건축 자재, 자동차 소재 기업이다. 계열에서 분리할 LG상사의 시가총액은 7151억원, LG하우시스는 5856억원으로 구 고문의 현재 지분 가치로 충분히 충당이 가능한 수준이라는 게 재계의 평가다. 다만 계열분리 회사의 규모가 작다는 점에서 LG 안팎에서는 반도체 설계 회사인 실리콘웍스와 화학 소재 제조사 LG MMA의 추가 분리 전망도 나온다.
LG그룹이 이번에 계열분리를 결심한 데는 구광모 회장이 취임 3년을 맞으면서 시기적으로도 적당한 때가 됐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구 고문의 계열분리는 선대부터 이어온 LG그룹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LG그룹은 선대 회장이 별세하면 장남이 그룹 경영을 이어받고, 동생들이 분리해 나가는 ‘형제 독립 경영’ 체제 전통을 이어왔다.
구본준 고문은 2016년 말부터 구본무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을 두루 챙기며 대외적으로도 그룹을 대표하는 행보를 보였다. 조카인 구광모 LG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2018년말 퇴임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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