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 해 동안 한국 경제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반도체 분야만큼은 흔들림없이 성장세를 이어갔다. 비대면 추세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올해 1~3분기 내내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내년엔 메모리 반도체인 디램(DRAM)의 가격 상승에 힘입은 ‘슈퍼 사이클’마저 예상된다.
지난 15일 산업통상자원부의 발표를 보면, 올해 1~11월 반도체 누적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5% 늘어난 897억달러(약 98조원)다. 같은 기간 총수출액에서 반도체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4%였다. 반도체가 올해 우리나라 수출을 앞장서 견인한 모양새다. 이런 흐름은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올 들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1분기 3조9900억원→2분기 5조4300억원→3분기 5조5400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영업이익도 1분기 8003억원에서 2분기엔 1조9467억원으로 갑절 이상 증가했다. 3분기(1조2997억원)에도 1조원을 웃도는 이익을 냈다.
반도체 부문의 약진 배경으로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와 원격수업 등 비대면 경제가 활성화한 게 맨 먼저 꼽힌다. 비대면 활동에 쓰이는 피시(PC) 등 스마트기기에 탑재되는 반도체와 서버용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5세대 이동통신(5G)의 발전을 함께 이끌었다”며 “데이터센터들이 업그레이드되며 메모리 반도체가 호황을 맞았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내년에도 변함없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한발 더 나아가 증권가에서는 지난 2017년~2018년 지속됐던 반도체의 ‘슈퍼 사이클’이 재연되거나, 설령 그 정도 수준에는 못 미치더라도 반도체 부문의 성장세가 올해 수준을 뛰어넘을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올해 주춤했던 모바일용 디램도 가격이 상승해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지난 23일 펴낸 보고서에서 “내년 1분기부터 디램 가격 상승을 전망한다”며 “화웨이 러시오더(긴급주문)가 재고 소진을 앞당겼고 최근 오포·비보·샤오미의 모바일 반도체 주문이 확대되고 있다. 서버 업체들의 재고 축소로 데이터센터용 서버 반도체 주문도 재개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반도체 수급동향 조사기관인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도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내년 세계 반도체시장 매출은 올해보다 8.4% 성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매출은 올해보다 13.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슈퍼 사이클까지는 아니더라도 내년에 반도체 호황이 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지난 2018년 슈퍼 사이클은 예상치 못한 공급 부족으로 반도체 단가가 갑자기 크게 올랐던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에는 수요가 늘어나는 것에 맞춰 생산이 뒷받침되는 정상적인 구도의 반도체 시장 확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내년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중심으로 한 비메모리 반도체의 성장도 점쳐지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가 블랙리스트(Entity List)에 중국 파운드리 업체인 중신궈지(SMIC)를 추가함에 따라 비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도 관심을 끈다.
도현우 엔에이치(NH)투자증권의 애널리스트는 지난 21일 펴낸 보고서에서 “미국 정부의 제재로 향후 에스엠아이시 수주 물량에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에스엠아이시 제품의 상당수가 티에스엠시(TSMC), 삼성전자 등 다른 파운드리 업체들로 이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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