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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정치는 나한테 안맞아 나는 그저 합리주의자일뿐…”

등록 2021-02-21 15:23수정 2021-02-22 10:03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퇴임 회고…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펴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7년8개월간 회장으로 일하고 3월에 물러나는 박용만(66) 회장.
대한상공회의소에서 7년8개월간 회장으로 일하고 3월에 물러나는 박용만(66) 회장.
대한상공회의소에서 7년8개월간 회장으로 일하고 이번에 물러나는 박용만(66) 회장은 “정치는 나한테 맞지 않는다”며 “대한상의가 그동안 경제상황에서 큰 피해를 입어온 중소·중견기업을 대변하는 데 집중하고 대기업의 이해를 반영하는데 다소 소홀한 점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첫 인생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를 펴냈다.

오는 3월 회장 퇴임을 앞둔 박 회장은 21일 기자들과 가진 퇴임 간담회에서 “나는 정치에 뜻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거나 젊은이들의 꿈을 도와줄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러브콜이나 임명직 제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모르겠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생각은 해보겠지만 정치는 나한테 맞지 않는다. 정치는 싫다. 잘 할 수도 없다”고 답했다. 자신이 정치를 하면 안 되는 이유도 들었다. “기업인으로서 살아온 수십년 동안의 내 머릿속에 거의 기계처럼 굳어진 사고가 있다. 효율과 생산성과 수익성을 따라가는 사고다. 그런데 정치는 생산성과 수익성으로 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기업인의 사고와 기반은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내 소신이다.”

회장으로 있는 동안 18만 회원사(대-중견-중소기업, 상공인)에 대한 대한상의 역할을 묻는 질문엔 “그동안 경제상황이 너무 어려웠고 가장 피해를 보는 기업이 한계업종과 작은 기업들이라서 중소·중견기업에 집중을 했고, 그러다보니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큰데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이해를 반영하거나 대변하는데 좀 소홀하지 않았나 반성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새로 대한상의 회장에 취임하는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이 대기업 의견을 상당 부분 대변하겠구나 생각한다”며 “다만 최 회장이 기업간 상생·동반성장에 대한 생각도 강한 분이고, 자수성가한 미래 산업의 젊은 창업가들을 서울상의 회장단에 새로 많이 구성했으니,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과거에 하던 식으로 대기업 이해를 강력히 대변하는 그런 방식은 아닐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또 자신의 후임인 최태원 새 회장에 대해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이 잠시 지나가는 바람이나 조류가 아니라 이제는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뚜렷한 요구사항으로 자리잡은 것이고, 그런 면에서도 상당히 적절한 새 회장”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지난 17일 한국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최태원 회장은 부끄러움은 많지만 괜찮은 사람”이라도 말했다.

회장 재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뵐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2014년 8월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서울 광화문에서 시복식을 집전할 때 새벽 3시에 집에서 나온 뒤 행사장 가장 앞자리에 가족들과 앉아 행사 시작(오전 10시)때까지 5시간 이상 기다렸다. 당일 밤엔 “교황님을 뵙고 참회와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라는 메시지를 SNS에 올리기도 했다.

박용만 회장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박용만 회장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박 회장은 퇴임에 맞춰 자신의 첫 책으로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마음산책)를 펴냈다. 책에 대해 그는 “자서전이 아니다. 내가 글쓰는 걸 좋아해 평소에도 많이 쓴다. 쓴 글들을 모으고 다듬어서 책을 만든 것”이라며 “독자들과 일종의 책을 통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산문집치고는 책이 좀 두껍다”고 웃었다. 이 에세이집에는 이복형들과의 일화 등 가족사를 회고하는 청소년 박용만의 ‘그늘’ 대목도 몇군데 등장한다. 선친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6남 1녀 중 다섯째 아들인 박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틈만 나면 늘 명동성당에 가 앉아있곤 했던 18살 때, 아버지 장례식 날 처음으로 아버지 집에 발길을 들였고 장례가 끝나자 집안 큰형이 “너는 내 동생이다”라고 말했으며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모두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고 술회했다. 형들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박 회장을 기업인으로 가르치고 안내한 건 셋째 형 박용성 전 회장(대한상의 전 회장)이었다고 한다.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활동 등으로 대중과 활발하고 왕성하게 ‘소통’해온 그는 퇴임 간담회에서 “(비서실에서 계산한 걸 보니)회장 재임 동안 국내외를 포함해 내가 스피치를 493회 했고, 언론인과 218회(231시간 55분) 만났다고 한다. 정말 길죠?”하며 웃었다.

2014년 9월20일 <한겨레신문> 토요판 커버스토리로 실린 박용만 회장 인터뷰 기사
2014년 9월20일 <한겨레신문> 토요판 커버스토리로 실린 박용만 회장 인터뷰 기사
박 회장은 이미 대한상의 회장 취임 1년째인 2014년 9월20일 <한겨레신문> 인터뷰 기사(토요판 커버스토리)에서 “개처럼 벌면 그냥 개다”고 색다르고 거침없이 발언해 재계와 사회에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당시 “옛날에는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면 되는 세상이었지만, 요즘은 개처럼 벌면 그냥 개에 불과하다” “(복지재원 마련 등 필요성이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부자 증세도 가능하다”, “(법보다 더 엄격한 수준의) 규범과 관행을 지키지 않는 기업(인)은 사회적으로 왕따를 시켜야 한다”는 등 메가톤급 발언을 쏟아냈다.

그 후로도 재벌 총수이자 대표 경제단체 회장으로 다른 총수나 단체와는 차별화된 발언을 이어가며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는 평가도 받는다. 기업·재벌을 견제하고 감시·감독하기 위한 각종 정부 경제정책들을 놓고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합리적인 비판과 대안 제시를 우선시하는 박용만표 대한상의 정책노선을 표방해왔다. 박 회장의 이런 쓴소리를 둘러싸고 세간에서는 ‘진보적인 재벌총수’라고 논평하고, 재계 일각에서는 “혼자 튀는 회장, 엉뚱한 재벌총수”라고 못마땅해하는 시각과 정서도 있어 왔다. 박 회장은 평소에 이런 세평에 대해 “보수-진보의 이분법 잣대로 평가받는 건 싫다”며 “나는 그저 합리주의자일 뿐”이라고 말해 왔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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