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왼쪽). 사진은 2007년 4월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타결된 직후 당시 김종훈 수석대표와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우리나라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에 대해 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한국은 미국의 재가입과 관계없이 CPTPP 참여를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국이 먼저 CPTPP에 가입하고, 그 후 미국이 협정에 복귀하기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 통상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라는 얘기다.
31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법무법인 광장 통상연구원과 공동으로 연 ‘제1차 CPTPP 통상포럼’에서 커틀러는 “한국은 과거 TPP 협상 당시 주요 파트너 중 하나였지만, 관심 표명이 늦어져 가입 시기를 놓쳤다”며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타결, 영국의 CPTPP 가입 신청, 중국의 CPTPP 가입 검토 등을 볼 때 한국이 CPTPP 가입을 재고할 시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19 극복, 경제 회복 등 국내 현안에 집중하고 있어 CPTPP 재가입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날 포럼은 미국 워싱턴과 화상 연결로 진행됐다. 웬디 커틀러는 과거 한-미 FTA 협상 미국쪽 수석대표를 지냈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계획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 등도 올해 CPTPP 가입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날 포럼에서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CPTPP 재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신통상질서를 대비하고 우리 통상정책 방향을 재정립한다는 차원에서 CPTPP 가입 검토는 매우 적절하다”며,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국제사회에서 경제연대를 강화하려는 요구가 커질 것이다. 향후 미국이 주도하는 USMCA 등 통상협정을 토대로 새로운 경제협력체를 구상할 가능성을 고려하더라도 우리가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과정은 미래 통상협상력을 높이는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창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최근 FTA 등 통상협정에서 노동과 환경 규정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우리가 CPTPP에 가입할 경우 국내 기업들은 강화된 노조법과 탄소배출권 등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므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포럼 참석자들은 CPTPP 가입을 추진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빠른 시일내에 CPTPP 추가 가입 협상이 개시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참석자들은 한국의 CPTPP 가입시 대응과제로 △국영기업 △환경(수산보조금) △위생 및 식물위생조치(SPS) △지적재산권 등 신통상 규범에 대한 국내 수용성 여부를 먼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통상질서 재편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CPTPP 참여를 통해 글로벌 표준을 적극 수용하려는 정부의 정책방향은 바람직하다. 한·미FTA가 발효된지 9년이 지난 지금 CPTPP 가입 추진은 우리 경제체질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미 발효된 CPTPP에 추가 가입해야 하는 구조라서 기존 회원국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시장개방을 더 많이 감수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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