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 장기화와 경기 회복 기대감으로 물동량이 급증하는 등 해운 시황이 밝다. 이에 국내 유일 국적 원양 해운사인 에이치엠엠(HMM)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이 조심스레 거론된다. 흑자 전환은 물론 이익 개선 전망이 밝은 터라 채권단 관리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에이치엠엠의 명줄을 쥐고 있는 정부의 속내는 복잡하다.
■ 훨훨 나는 해운 시황과 에이치엠엠 실적
2011년 이후 해마다 수천억원씩 적자를 내오던 에이치엠엠의 경영실적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지난해엔 6조4133억원의 매출을 올려 980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불과 한 해전인 2019년에 3천억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낸 점을 염두에 두면 1년만의 급반전이다.
올해 들어 실적 개선 흐름은 더 강하다. 이달 중 발표 예정인 올 1분기(1~3월)에만 남긴 영업이익이 지난해 연간 이익을 뛰어넘을 것으로 시장 분석가들은 내다본다. 해운업은 통상 1분기가 비수기란 점을 염두에 두면 연간 기준 실적은 또다시 이 회사의 최대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이 확실시된다.
실적 개선은 두 갈래로 풀이된다. 우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직접적 영향이다. 국외 여행길이 막히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나타난 보복 소비 증가에 따른 물동량 증가다. 돈 쓸 길 막힌 소비자들이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소비재를 대상으로 소비를 늘렸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무르익고 있는 경기 회복 기대감도 물동량 확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르는 게 값’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뛰고 있는 해운 운임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4월 마지막 주 852.27이던 상하이해운컨테이너운임지수는 올해 4월 마지막 주에 3100.74였다. 1년 만에 운임이 4배 가까이 상승한 셈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이 잦아들기 전까지는 해운 시황과 실적 증가 추이가 지금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 “공격 경영에 나설 수 있게 해야”…산은도 지분 매각설 솔솔
해운업계를 중심으로 에이치엠엠이 채권단 관리 상태에서 벗어나 공격 경영에 나설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에이치엠엠 관계자는 <한겨레>에 “채권단 관리 체제에서는 빠른 의사결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극심한 경영난 끝에 지난 2016년 대출금 등을 주식으로 바꾸는 출자전환과 유상증자 과정을 거쳐 최대주주가 현대엘리베이터에서 산업은행으로 바뀌었다.
주채권은행이자 최대주주인 산은 쪽에서도 지분 매각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한겨레>에 “실적이 좋아진 게 에이치엠엠 실력인지 등을 짚어봐야 할 부분도 있다”면서도 “(지분) 매각은 구조조정 시작 때부터 얘기가 나왔다. 기본적으로 기업은 민간에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이치엠엠 주가가 4년 새 7천원 대에서 4만원대로 크게 오른 점을 염두에 두면 산은은 지분 매각으로 상당한 자본이득도 얻을 수 있다.
구체적인 매각 시나리오도 나온다. 오는 6월 말이 만기가 되는 3천억원 상당의 전환사채(CB)를 산은이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지분율이 26.2%로 늘어나는 만큼 일부 지분을 시장에 내놓지 않겠냐는 예측이다. 전환가격이 현 주가보다 크게 낮은 6천원 선이어서 산은의 주식 전환 가능성은 농후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산은은 15% 이상 지분을 보유하게 되면 (에이치엠엠을) 자회사로 편입해야 한다. 15% 초과 지분은 시장에 내놓을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와 현대글로비스가 지분 인수 잠재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두 회사 모두 철강과 자동차라는 물동량을 갖고 있는 터라 지분 인수 시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현대글로비스는 그룹 내 일감 비중을 낮추는 효과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 정부, 신중론 여전…“자생력 없다”
업계와 시장의 들뜬 분위기와 달리 정부는 신중한 태도다. 업황 개선의 지속성 여부를 좀더 지켜봐야한다는 시각이 많다. 또 에이치엠엠 정상화를 위해 쏟아부은 공적 자금이 적지 않은 점도 조기 매각설에 정부가 거리를 두는 이유다. 실제 지분 매각을 위한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간 공식 협의도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서정호 해수부 해운정책과장은 “반짝 호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산은의 지분 매각은) 시기상조로 본다”며 “2018년 (정부가 세운)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이 해운 시황과 맞아떨어지며 업체들의 실적이 좋아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서 과장은 “신용등급도 여전히 낮아 자생력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재섭 선임기자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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