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은 에스케이(SK)하이닉스 디(D)램 담당. 에스케이하이닉스 제공
“자기 자신을 믿고, 본인의 페이스대로 가야 어느 회사에서든 오래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장지은(47) 에스케이(SK)하이닉스 디(D)램 담당(부사장)의 별명은 ‘디램의 어머니’다. 1997년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에 입사해 SDR부터 지난해 10월 회사가 세계 최초로 출시한 DDR5까지 23년간 피시(PC)와 서버에 들어가는 디램 제품 설계를 맡아왔다.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계업무가 너무 재밌었다”는 장 담당은 지난해 12월 새로 선임된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여성 임원 3명 가운데 유일한 내부승진자다. 나머지 2명은 IBM 등 외부에서 영입됐다. 지난 25일 경기 성남시 에스케이하이닉스 분당캠퍼스에서 장 담당을 만나 ‘회사에서 롱런하는 법’을 들었다.
장 담당은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과 단순한 성격을 20년 넘게 회사를 즐겁게 다닐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꼽았다. “성격이 단순해서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빨리 잊는 편이에요. 일할 땐 무척 엄격한 편이라 데이터를 정확하게 챙기지 못한 후배를 혼내더라도, 뒤끝은 없어요.” 장 담당에게 ‘디램의 어머니’란 별명을 붙여준 후배들이 그를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는 이유란다.
임원이 된 지 5개월, 그가 요즘 제일 관심을 갖는 주제는 ‘구성원의 성장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 것인가’다. 자신 역시 회사를 다니며 엔지니어로서의 기술력이 매년 성장했을 때 가장 큰 보람과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회사에서 가장 고마워하는 사람도 자신을 엔지니어로서 자극을 준 한 멘토 선배다. “신입사원 때 만난 멘토 선배를 거의 10년간 따라다니며 배웠어요. 제게 모든 설계, 불량분석 업무를 가르쳐주신 분이죠.”
장 담당은 젊은 직원들에게 “주변 동료와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개인마다 성장하는 속도와 타이밍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메모리 설계 업무를 거쳐 간 후배들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이다. “자신이 뭘 잘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해요. 설계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들어 했던 친구도 본인한테 맞는 일을 찾으면 되게 잘하더라고요.”
그 역시도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인사평가 결과에 따라 기뻤던 순간도, 위축됐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장 담당은 “그게(인사고과) 정답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자신의 성장을 평가할 때 조직장의 시선을 기준으로 삼기 보다는 스스로 세운 계획과 목표를 얼만큼 달성했는가를 놓고 되돌아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하니까’ 또는 ‘내가 저 사람보다 잘하니까’라는 식으로 누군가의 비교대상이 되는 건 참 힘든 일이에요.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은 자기가 제일 잘 아는 거니까 그 길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게 좀더 좋지 않을까요?”
“첫 여성 리더 꼬리표 어색”…실력으로 평가받아야
인터뷰 말미에 여성 엔지니어로서의 고충도 물었다. 장 담당이 1997년 11월 현대전자 공채로 입사했을 때 신입사원 200명 가운데 여성은 그를 포함해 모두 3명뿐이었다. 그나마 다른 2명은 입사한 지 3년 안에 회사를 떠났다. 이런 여성 불모지에서 임원에 오르기까지 남다른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는 의외로 담담한 답변과 함께 외려 의문을 드러냈다.
“프로젝트 리더 매니저(PL·Project Leader Manager)가 되기 전까진 엔지니어로만 평가를 받았어요. 그런데 리더가 됐을 때 ‘첫 여성 리더’라며 내 인생에 ‘여성’이란 꼬리표가 붙더라고요. 솔직히 굉장히 어색했습니다.”
장 담당이 회사 안팎에서 ‘여성임원’으로 불리는 걸 못마땅해하는 후배들도 많다. 그는 “한 남자 후배가 ‘선배는 실력으로 임원이 된 건데, 왜 여성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오른 것 같은 인터뷰를 하나’라며 따져 물은 적이 있다”며 “그렇게 말해주는 후배도 고맙지만, 여성 후배들이 나의 행보를 더 눈여겨 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라며 “조직생활을 하며 ‘남자냐, 여자냐’를 가르는 것은 이상하지만, 내가 여성 엔지니어들한테 롤모델로서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다”고 설명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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