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씨씨(KCC) 그룹 일가가 고 정상영 명예회장의 보유 주식 등 유산 1500억원을 장학사업과 박물관 건립비 등으로 기부한다. 장남 정몽진 회장의 사재 500억원을 더해 사회환원 규모는 2천억원이다.
정몽진 케이씨씨 회장은 31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부친의 뜻을 받들어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고 정 명예회장이 개인적으로 보유했던 100억원 규모 현대중공업지주 주식은 민족사관고등학교 장학금으로 기부한다. 최명재 전 파스퇴르유업 회장이 강원도 횡성에 설립한 자율형 사립고인 민족사관고는 2025년 일반고 전환을 앞두고 폐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족들은 오는 2024년까지 해마다 25억원씩 4년간 100억원을 민족사관고에 지원하고, 이후에도 자사고를 유지하면 추가 지원을 할 계획이다.
정 회장은 “부친께서 살아계실 때 한국에서도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나오길 굉장히 바라셨다”며 “국내에 화학 전문고등학교를 세우려고 했으나 당시 정부 정책과 맞지 않아 계획을 접었던 일이 있다”고 말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모교인 용산고와 동국대에도 사재 100억원 이상을 기부한 바 있다.
특히 고 정 명예회장의 케이씨씨 지분(3%)과 현대중공업지주 주식 등 시가 1400억원 상당의 주식은 서전문화재단에 기탁해 소리박물관(음향기기 전문 박물관) 건립에 쓰인다. 고 정 명예회장은 케이씨씨 지분 5.05%와 케이씨씨글라스 지분 5.41%를 남겼다. 재단에 기부하는 3%를 제외한 나머지 케이씨씨 지분 2%는 정몽진 회장과 3남 정몽열 케이씨씨건설 회장이 각각 1%씩을 상속받고, 케이씨씨글라스 지분 5.41%는 차남 정몽익 케이씨씨글라스 회장이 물려받기로 했다.
서전문화재단이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짓고 있는 소리박물관에는 정몽진 케이씨씨 회장과 정 회장 스승인 오디오 전문가 고 최봉식 선생이 수집한 웨스턴 일렉트릭의 1926년산 극장용 스피커, 초기 전화기, 오르골, 축음기, 진공관 등 희귀작품을 전시한다. 박물관은 올해 열리는 도쿄올림픽 주 경기장을 설계한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가 설계했으며 대지 2330m²(705평), 연건축면적 1만519m²(3182평) 규모로 오는 2023년 준공 예정이다.
오디오 수집가인 정몽진 회장은 소리박물관 건립을 위해 서전재단에 500억원 규모 소장품과 토지 등을 기부했다. 정 회장은 박물관에 기증할 소장품의 유지와 보수 등을 위해 2007년 실바톤어쿠스틱스(자본금 1억원)라는 오디오 전문회사를 세운 바 있다. 정 회장은 “고인께서도 생전에 본인 집에 오디오를 가져다 놓는 등 소장품을 좋아하셨다”면서 “세계 최고급 음향기기를 박물관에 전시해 일반인이 즐길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인 고 정상영 명예회장은 1958년 창업해 재계 서열 33위인 케이씨씨 그룹을 일궜다. 올해 1월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나며 범현대가의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도 막을 내렸다. 정몽진 회장은 “부친께선 항상 형제끼리 절대로 싸우지 말고 화목하게 지내라고 당부하셨다”고 전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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