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값이 오른 건 원자재 때문이에요.”
미국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한 소비자가 테슬라의 차량 가격 인상에 불만을 토로하자 “자동차 업계 전반의 공급망 압박”이 원인이라며 해명한 것이다. 전기차 전문 매체 <일렉트렉>에 따르면 테슬라는 최근 몇 달 사이 차량 가격을 5회나 인상했다. 가장 저가인 ‘모델3 스탠다드 래인지 플러스’의 판매 가격은 올해 2월 최저 3만7천달러(4100만원)에서 현재 4만달러(4400만원)로 8% 넘게 올랐다.
자동차 판매 시장의 회복세가 뚜렷하다. 코로나19 이후 수요 회복에 힘입어서다. 그러나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과 부품 가격 급등 여파로 생산 둔화, 차량 가격 인상 우려 등도 고개를 들고 있다.
1일 국내 5개 완성차 업체가 공개한 판매 실적을 보면, 지난달 자동차 내수·수출 판매 대수는 약 60만대로 지난해 5월에 견줘 40%가량(약 17만대) 늘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한국지엠(GM),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판매량을 합친 것이다.
회사별로 현대차와 기아가 판매 증가를 이끌었다. 두 회사의 지난달 자동차 판매 대수는 57만여 대로 전년 동월 대비 45% 급증했다. 지난해 이맘때에는 코로나 여파로 생산 차질과 판매 부진을 겪었으나 최근 미국 등 해외 수요가 부쩍 늘며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 쌍용차도 지난달 판매량(8750대)이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6% 증가하며 모처럼 반등했다.
반면 한국지엠(1만6428대), 르노삼성차(1만348대)는 34%, 13% 각각 감소했다.
자동차 판매 시장에 봄바람이 불지만 업계 분위기는 썩 밝지 않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차량용 반도체 구하기가 여전히 어렵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자재 가격마저 껑충 뛰어오르고 있어서다.
실제로 현대차, 기아 등 완성차 업체는 이달부터 포스코 등 철강 업체가 생산하는 자동차용 강판의 납품 가격을 톤(t)당 5만원 올려주기로 했다. 철광석 등 원재료 가격이 올해 들어서만 50% 가까이 급등하며 단가 조정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두 업계의 강판 가격 인상 합의는 4년 만이다. 대형 철강 업체 관계자는 “지금까진 원료 가격이 올라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지만 이젠 한계”라고 전했다.
철강 업계에서는 당분간 이 같은 가격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자동차 제조사로선 회사가 수익성 악화를 감내하거나 차량 가격 인상에 나설 유인이 커진 셈이다. 다만 국내 완성차 업체의 경우 미국 테슬라와 달리 이미 출시한 차량의 가격을 끌어올리긴 어려운 상황이다. 소비자 반발 때문이다.
대신 앞으로 나올 신차나 부분 변경(페이스리프트) 차량 등에 원자재 가격 인상이 반영될 가능성은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연내 제네시스 G80 전기차, K9 페이스리프트 모델, 신형 스포티지 등을 내놓을 계획이다.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업계의 판매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당장 원자재 가격 상승을 차량 가격에 전가하기보다는 우선 영업점 판매 인센티브(성과보수) 등 비용을 줄이고 정 안 되면 찻값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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