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부동산원 서울강남지사 대강당에서 열린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공청회'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부가 내년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인 평균 69%(공동주택 기준)로 되돌릴 계획이다.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다. 기존 현실화율 단계적 상향 계획에서 ‘3년 역주행’ 하는 조처다.
유선종 공시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 자문위원(건국대 부동산학 교수)은 22일 국토교통부 주최로 한국부동산원 서울강남지사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수정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날 발표와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조만간 최종 계획안을 결정할 예정인데, 유 자문위원 수정안을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지난 4일 열린 1차 공청회에서 정부 발주 연구용역을 수행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내년도 공시가격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정부는 “추가 완화가 필요하다”며 이날 2차 공청회를 마련했다.
유 자문위원은 2023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하향하자는 수정안을 내놨다. 원래 정해진 계획대로면 내년도 공동주택 현실화율은 평균 72.7%여야 하지만, 2020년 수준을 적용하면 평균 69%로 3.7%포인트 내려간다. 내년 표준 단독주택 평균 현실화율은 기존 계획에서 60.4%였으나 수정안에서는 53.6%로 낮아졌다. 지난 몇년간 조금씩 상향 조정되어온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방향을 틀어 내려가게 된 것이다. 2020년 11월 정부는 시세의 50~70%대인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5~2030년까지 90%로 끌어올리는 계획을 발표하고 시행해왔다. 유 자문위원은 2024년 이후 적용할 현실화율, 목표 현실화율(현재 90%) 등에 대해서는 “시장 상황과 경제 여건 등을 고려해 2023년 하반기에 다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낮아지면 과세표준의 ‘출발점’이 되는 공시가격(전년도 말 시세×현실화율)이 낮아진다. 그리고 그 결과로 종부세(공시가격×공정시장가액비율×세율) 부담이 줄어든다. 윤석열 대통령은 부동산 세 부담 수준을 2020년까지 낮추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법 개정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반대에 막혀 있다. 세 부담을 낮출 다른 방안인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종부세의 경우 올해 100%에서 60%로 낮춰, 종부세법상 더 하향 조정할 여지가 없다. 상황이 이렇자 윤 정부는 기존 공시가격 현실화율 계획을 수정해 또 다른 세 부담 완화안을 찾은 모양새다.
남영우 국토부 토지정책관은 이날 공청회에서 “조세재정연구원이 제시한 현실화율 고정(내년에 올해분 적용)만으론 당초 계획한 2020년 수준의 국민 세 부담 도출에 제약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율 하향 조정 이유로 집값 하락기가 이어지며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가 역전되는 사례가 일부 나타난 점도 꼽고 있다.
그러나 조정흔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위원(감정평가사)은 이날 공청회에서 “공시가격은 흔들리지 않는 지표로서, 국가의 장기적 정책 과제에 활용되어야 한다”며 “정권에 따라서, 또는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서 올렸다가 내렸다가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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