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잔금 남기거나 등기 늦춰
서울 성북구 월곡동에 새로 짓는 아파트를 산 장아무개(38)씨는 정부의 거래세(취득·등록세) 인하 방침에 맞춰 애초 계획했던 입주 시기를 내달 중순께로 한달 정도 미루기로 했다. 이 아파트의 입주 지정일 기한은 원래 8월 중순까지다. 하지만 이 기한을 맞추다 보면 다음달 초로 예정된 취득·등록세 인하 혜택을 볼 수 없게 된다. 장씨는 대신 잔금을 한달 정도 늦게 낸 데 따른 연체료는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의 주택에 대한 취득·등록세 인하가 다음달 초로 예정된 가운데, 이달에 입주 중인 아파트마다 건설사와 입주자들이 거래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은 입주 지정일을 9월 초 이후로 늦춰달라고 건설회사 쪽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건설업체들은 대부분 입주 지정일 연장은 어렵다며 난색을 보인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관할 관청의 사용승인에 맞춰 정해진 입주 지정일을 갑자기 연장할 경우 조세 회피를 위한 편법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며 “이런 점을 입주자들에게 설명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입주자의 세금 탈루를 도와준 건설업체가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일부 건설사는 입주 예정자들의 빗발치는 요청에 따라 입주자가 세금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면서도 건설사도 다치지 않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눈길을 끌고 있다. ㄷ건설은 입주 지정일 기한이 이달 30일로 정해져 있는 부천 역곡동 아파트 계약자들이 분양대금의 잔금을 전부 내지 않고 50만~100만원 정도 남길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사실상 잔금 납입을 늦게 해 입주자들이 취득세 인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잔금 연체에 따른 부담도 최소화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부천 역곡동 ㄷ아파트의 31평형 계약자 장아무개씨는 잔금 5천만원 가운데 4900만원을 내고 100만원은 9월 말에 낼 수 있게 됐다. 업체 쪽은 이 계약자의 잔금을 보관하다가 9월 말에 한꺼번에 입금처리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계약자는 이달 말까지 입주할 때보다 세금을 250만원 아끼면서도 연체료는 불과 1만원만 내면 된다. 건설업체 쪽이 입주자들의 편의를 위해 연체료를 포기한 셈이다.
잔금을 냈더라도 아직 등기를 하지 않은 아파트 입주자의 경우 세금 인하 시점 이후로 등기를 미루면 등록세(2% →1%)를 적게 낼 수 있다. 건설사들도 이를 감안해 입주 중이거나 막 입주를 끝낸 아파트의 경우 계약자의 소유권 이전 등기가 세금 인하 시행 뒤에 이뤄지도록 형편을 봐주고 있다.
최종훈 김학준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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