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주거지와 고층형·블록형 아파트 비교
바깥엔 중·저층 건물, 안쪽엔 정원…서울시, 올해말 시범지역 선정
한국에선 생소하지만, 유럽과 미국·일본에서 널리 보급된 도시형 공동주택인 ‘블록형 아파트’가 국내에도 도입되고 있다. 도로에 면한 중저층의 아파트와 중앙정원이 특징인 블록형 아파트는 1980년대 이후 한국인 주거의 대명사가 된 고층·판상형 아파트를 대체할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획일성 탈피 대안 떠올라
대한주택공사는 지난 4월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 택지개발 지구에 ㅁ자와 ㄷ자 모양의 블록형 국민임대 아파트 1173가구를 공급했다. 이 단지는 전용면적 36㎡ 719가구, 전용면적 46㎡ 454가구로 구성됐다. 아파트 건물 사이를 조금씩 띄우고 10층이 넘는 중층형과 10층 이하의 저층형을 섞은 형태로 조성된다.
주공은 이에 앞서 2004년 10월에도 서울 강서구 등촌동 주공 11단지에 52㎡형, 59~60㎡형 등 두 가지로 이뤄진 350가구의 국민임대 주택단지를 공급했다. 두 개의 ㄷ자 모양으로 지어진 이 단지는 아파트 건물 사이를 조금 띄웠지만, 국내에서 거의 처음 도입된 블록형 아파트로 주목받았다. 특히 국민임대 단지에서 볼 수 없는 품위있는 외관도 눈길을 끌었다.
주공 주택도시연구원의 서수정 연구원은 “이 아파트들은 건물을 바깥쪽에, 정원과 부대시설 등을 중앙에 배치했다는 점에서 블록형 아파트라고 할 수 있으나, 기존 도시의 주택 블록에 공급한 것이 아니라, 택지개발 지구에 공급했다는 점에서 본격 블록형 아파트라고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에스에이치(SH)공사가 은평구 뉴타운에 공급하는 아파트 가운데 1·2지구 1807가구도 이런 블록형 아파트를 시도하고 있다. 배경동 에스에이치공사의 뉴타운 본부장은 “기존의 판상형 아파트의 획일적인 고층과 남향 배치가 도시의 경관을 위압적이고 단조롭게 만든다”며 “블록형 아파트는 경관을 개선할 뿐 아니라, 중앙정원을 통해 아늑한 휴식과 안정감을 준다”고 말했다.
ㄷ자형으로 아늑한 느낌
블록형 아파트의 전형적인 형태는 기존 도시에 형성된 블록을 따라 짓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아파트가 드물지만,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도시 공동주택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다. 쌍용건설이 공급한 서울 종로구의 주상복합 ‘경희궁의 아침’은 도심의 기존 주택지를 재개발하면서 지었다는 점에서 블록형 아파트에 가깝다. 그러나 최고 높이가 16층에 이른다는 점에서 전형적 블록형 아파트와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주공이나 서울시는 기존 도시의 단독·다세대·다가구 주택 지역을 재개발하면서 기존의 고층 아파트 대신 블록형 아파트를 공급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지난해 서울 광진구 화양동과 서초구 방배동의 주택 지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블록형 아파트를 고층 아파트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연구를 맡은 임희지 연구위원은 “기존 주택 지역에서는 주택들이 여러 겹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 방범이나 주차, 사생활 등에 어려움이 많다”며 “블록형 아파트 재건축을 통해 주차장이나 녹지 등 공동시설을 확보하면서도 주변 도로나 경관과 잘 연계되는 주거지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중 이일공오 건축사사무소장은 “블록형 아파트는 단지 안팎의 지역 공동체 형성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아직은 낯선 주거문화
서울시는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올해 말께 블록형 아파트 시범 사업 대상지를 선정할 계획이다. 정병일 주거정비과장은 “도시에는 고층·대단지 아파트뿐 아니라, 중저층·중소단지 아파트도 필요하다”며 “서울시에서 지원해 모델이 될 만한 블록형 아파트 단지를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저층의 블록형 아파트는 아직까지 시민들이나 시장에 익숙하지 않아 환영받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2004~2005년 서울 왕십리 뉴타운의 마스터 아키텍트(MA)를 맡았던 정기용 건축가는 “지역 공동체와 다양한 주거공간을 위해 블록형·중정형 아파트를 제안했으나, 기존 아파트를 원하는 주민들의 반대가 많았다”며 “앞으로 공공투자와 좋은 사례 제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행사인 피데스개발의 김승배 대표도 “고층의 아파트가 더 잘 팔린다는 믿음, 아파트법이나 다름없는 주택법의 한계를 극복해야 블록형 아파트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서울 강서구 등촌동 주공 11단지의 블록형 아파트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베이타운의 블록형 아파트
은평 뉴타운에 공급되는 블록형 아파트 조감도
'미국 뉴욕 맨해튼의 블록형 아파트인 다코타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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