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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아파트, 새 옷을 입다

등록 2010-03-24 19:08

낡은 아파트, 새 옷을 입다
낡은 아파트, 새 옷을 입다
[한겨레 특집 | 리모델링]
주거면적 30% 늘고 편의시설까지
자산가치 3.3㎡당 300만원 ‘껑충’
“겉뿐 아니라 내부구조도 확 바뀌어”
난방비·수도요금 등 절반으로 뚝
‘가구당 1대+α’ 주차전쟁도 해




‘리모델링 1호’ 방배 쌍용

서울지하철 4·7호선 환승역인 이수역 1번 출구를 나와 10분쯤 걷다보면, 외관이 고풍스러운 아파트 세동을 만난다. 서울 방배동 ‘쌍용예가 클래식’이다. 옅은 갈색 중심의 외관에다 유럽풍 건축양식을 본뜬 동 출입구, 꼭대기의 고급스러운 몰딩 장식이 잘 어우러진 느낌이다. 이 아파트는 1978년에 지어, 올해 나이가 32살이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살펴봐도 30년 이상 된 아파트로 보이지 않는다. 세월을 거스른 비결은 뭘까.

■ 관리비는 줄고 편의시설은 늘고 이 아파트단지는 지난 2006년 한 차례 ‘성형수술’을 받았다. 과거 ‘궁전아파트’로 불렸던 쌍용예가는 시설 노화에다 심각한 주차난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3년 리모델링을 시작해 2006년 12월 새롭게 탄생했다. 골조의 3분의 2를 남겨놓고 3분의 1을 뜯어낸 대대적인 수술로, 단지 전체로는 국내에서 리모델링 1호 아파트다.

복도식 통로가 계단식으로 바뀌었고, 실내 거주공간에선 북쪽에 배치된 주방이 남쪽으로 옮겨졌다. 지하주차장이 생겨 지하까지 엘리베이터도 다닌다. 실거주 면적도 기존의 집에 견줘 최대 30%까지 늘어났다. 구석구석 살펴보면 변화가 더욱 놀랍다. 증축한 시설은 기존 구조물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거실 귀퉁이에 흉물스럽게 자리잡아 있던 두터운 내력기둥은 90도 돌려져 공간효율이 한층 높아졌다. 입주자 공동편의시설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단지에 탁구장과 골프연습장, 헬스장, 독서실 등이 생겼다. 동마다 출입구에는 첨단 무인경비시스템도 갖췄다.

주민들이 체감하는 만족지수는 이런 데서만 높아진 게 아니다. 우선 관리비가 확 줄었다. 입주자 최상애씨는 “단열이 잘돼 예전엔 한달에 가스비만 평균 20만원이 넘게 나왔는데, 지금은 10만원 안쪽으로 내렸다”고 말했다. 또 과거 궁전아파트 시절에는 중앙난방으로 각 가구의 사용량과 관계없이 모두 똑같은 요금을 냈지만, 지금은 가구마다 계량기를 달아 쓴 만큼만 난방비를 내면 돼 합리적이다. 수도요금도 줄었다. 리모델링 전에는 녹슨 배관 때문에 30분 동안 물을 틀어놔야 깨끗한 물을 쓸 수 있어 낭비가 심했다.

넓어진 주차장 덕에 늦은 귀가에도 주차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예전에는 160대를 주차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230대로 늘어나 전가구(216가구)가 한 대씩 주차를 할 수 있게 됐다. 쌍용예가 리모델링주택조합을 이끌었던 김인식 조합장은 “지하 2층까지 주차장을 만들어 주차 가능 대수를 더 늘리려고 했지만, 단지 전체를 리모델링한 첫 사례이다 보니 주민들이 불안해해 그러지 못했다”며 “지금 많은 입주자들이 당시 선택을 아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뒤 쌍용예가에 대한 주변의 평판도 좋아졌다. 박사공인중개사무소의 허일두 사장은 “내력벽과 기둥 때문에 공간활용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외관이나 인테리어 등은 신축아파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며 “주변 시세를 고려하면 매맷값이 나쁘지 않고, 가까이 있는 삼호아파트가 재건축되면 상승작용을 일으켜 쌍용예가의 가치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입주자들은 리모델링 비용으로 3.3㎡에 약 260만원을 들였는데, 집값은 3.3㎡당 550만원가량 올라 비용보다 자산가치 상승폭이 더 크다. 리모델링 전 138㎡형(현재 175㎡) 기준으로 3.3㎡당 1900만원 안팎이던 시세가 현재 2450만원 수준이다.

■ 리모델링…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방배 쌍용예가는 국내 리모델링 아파트의 ‘대표 선수’다. 리모델링을 검토하거나 추진하는 국내 아파트 입주자들은 물론, 이웃 일본에서도 건축전문가들이 견학을 올 정도다. 이들은 외관이 달라진 것뿐 아니라 확 바뀐 내부구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고 한다.

공사를 맡았던 쌍용건설은 국내 리모델링 기술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방배 쌍용예가에는 리모델링 관련 첨단공법이 적용됐다. ‘엘리베이터 지하연장공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기존 지하에 임시구조물을 설치해 건물의 안전성을 강화한 뒤 엘리베이터가 그 구조물 아래까지 파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공법이다.

오는 7월 새단장을 마치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평화아파트 리모델링에는 공법들이 더 진화했다. 역시 쌍용건설이 공사를 맡은 이 아파트는 리모델링을 통해 기존 1층을 ‘필로티’(기둥만 서 있는 트인 공간)로 바꾸는 대신 위로 한층을 더 올렸다. 궁전아파트 리모델링 때에는 법적 제약 때문에 시도할 수 없었던 공법이다. 또 국내 아파트 리모델링으로는 최초로, 벽체에 진도 6.5~7.0의 지진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댐퍼(진동흡수 장치)를 심어 아파트 전체에 내진설계를 적용했다. 기존 골조를 유지한 가운데 지하 2층까지 주차장을 만들었고, 엘리베이터도 지하 2층까지 연결된다.

쌍용건설은 현재 리모델링을 검토중인 서울 송파구 오금동의 아남아파트와 강서구 염창동의 우성3차아파트에는 지하 3층까지 주차공간 확보를 시도해볼 계획이다. 쌍용건설 리모델링사업부 양영규 부장은 “땅이 좁고 자원이 한정된 우리나라에서 주택난을 해결하려면 리모델링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지하주차장 신설, 엘리베이터 지하연장, 내진설계 같은 기술을 바탕으로 100년 이상 가는 아파트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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