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자들 돈 벌게 해주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어요.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으로 돈을 더 버는 구조가 됐어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요. 분통이 터져서요. 저게 진짜 진보인가, 그런 생각마저 들어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윤순철 사무총장 말이다. 3년 전 사무총장에 취임한 그는 최근 연임이 결정돼 2022년까지 직을 맡는다. 그는 황도수 상임집행위원장, 박상인 정책위원장과 함께 경실련의 삼두마차다. 단체의 실무 활동과 살림을 책임지고 주요한 정책 결정도 이끈다. 8일 서울 혜화역 근처 경실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경실련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매우 비판적이다. “문 대통령이 7일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지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말이 안 돼요. 현 정부가 언제 전쟁을 했어요. 전쟁했으면 지금처럼 됐겠어요.”
‘대한민국 땅값 문재인 정부 들어 2000조 상승’, ‘문재인 청와대 참모진 부동산 3년 새 3억원 올라’. 지난달 경실련이 낸 자료를 보도한 언론 기사 제목들이다. 현 정부 들어 급등한 부동산 문제에 대한 경실련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는 94년 간사로 경실련 활동을 시작했다. 부동산과 국책 사업, 철도 민영화 문제를 주로 맡았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경실련에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를 만든 이도 그였다. 성명서 한번 내고 언론 보도에 목을 매는 운동 관행으로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보고 ‘끝까지 파는’ 별동대를 따로 만든 것이다. 그가 본부에서 목소리를 높인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나 분양원가 공개는 참여정부 정책이 됐다.
지난해 설립 30돌이었던 경실련의 현재 2대 과제는 부동산건설 개혁과 재벌 개혁이다. “경실련이 원래 부동산 때문에 생겼어요. 89년 7월 발기인 대회 전 임시모임 이름이 ‘부동산 투기와 싸우는 시민의 모임’이었어요. 다루는 영역이 너무 좁다고 해 ‘경제’로 바꾸고, ‘정의’를 지향하자고 해 지금 이름이 됐죠. 경실련 발기인 대회 때 제시한 6대 실천 과제 중 하나가 ‘토지는 생산에 쓰여야지 재산증식 수단에 사용돼선 안 된다’였어요.”
30년 뒤 경제정의는 어느 정도 나아갔을까. “빈부 격차와 양극화는 더 심화했어요. 그때도 재벌 개혁을 주장했는데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참여정부 때 경실련이 주장해 분양가 상한제나 분양원가 공개 제도를 도입했는데 정권이 바뀐 뒤 없어졌어요. 그리고 다시 집값이 올랐죠.”
그는 현 정부의 부동산·재벌 정책이 매우 실망스럽다고 했다. “부동산은 가진 만큼 세금을 물리면 됩니다. 세금 산정 기준인 공시지가를 현실화하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죠. 분양가 상한제도 전면 실시하고요. 투기 세력은 언제나 있어요. 이들이 세금 때문에 투기할 마음을 갖지 않도록 정책을 펴면 됩니다. 현 정부는 출범 초 보유세를 제대로 올리지 않았어요. 이 때문에 아파트값이 널뛰기했죠. 지금 빌딩이나 상가 공시지가는 시세 대비 30~40%에 불과해요. 아파트 한 채 있는 사람이 빌딩주보다 두배 세금을 내고 있어요.”
최근 총장 연임해 2022년까지
경실련 살림과 실무 책임 맡아
학생운동 거쳐 94년부터 간사 활동
정부 부동산 정책에 비판적 공세
“가진 만큼 세금 매겨야 하는데
현 정부 소극적 자세로 집값 올라”
재벌 개혁은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 구조를 바꾸는 게 핵심 목표라고 했다. “정부가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는 구조적인 개혁은 주저주저하고 원·하청 구조와 같은 갑을 문제에만 신경 쓰고 있어요. 재벌 개혁 담당 부처가 공정거래위원회인데 현 정부 들어 한 게 없어요. 김상조 전 위원장이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 하나 만들어 놓고 청와대로 갔죠.”
경제정의 실현에 왜 집이 중요할까? “한국에서 무주택자는 평생 집 걱정하다 죽어요. 의식주 중 돈이 가장 많이 드는 게 주입니다. 집 때문에 딴 거를 못해요. 정부 정책으로 집값이 1억, 2억 오르는데 누가 일하려고 합니까. 촛불 정부라면 집권 초 ‘몇 년 뒤에는 집값 걱정 없이 살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위해 일관되게 정책을 폈어야죠.”
고향이 전남 해남인 그는 학생운동을 거쳐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한신대 기독교교육과 1학년 때 ‘건대 사태’로 구속되기도 했다. 한신대 입학은 고교 시절부터 사회를 바꾸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아들에게 기독교장로회 목회자인 아버지가 권유한 게 영향을 미쳤단다. “아버지가 한신대를 가면 운동과 목회를 같이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한신대 다닐 때 조직 사건에 연루돼 수배도 받았단다. “현 경실련 상근자 20명 중 제가 유일하게 학생운동 경험자입니다. 학생운동 출신은 성명서 작성이나 상황 판단이 빠르죠. 요즘 들어오는 활동가들은 훈련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최소 월 1만원 회비를 내는 경실련 회원은 1만5천명이란다. “많을 때는 2만명까지 갔죠. 지금 서울 상근자가 20명이고 지방까지 하면 70명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서울 상근자가 30명이었어요. 이명박 정부 들어 사회적 자본이 보수 쪽으로 몰리고 기부금도 줄면서 어려움을 겪었죠.” 회비, 후원금과 잡지 <월간 경실련> 광고 등으로 살림을 꾸리고 있단다. “수입 중 회비가 45% 정도죠.”
경실련은 당파성이 비교적 덜한 시민단체로 알려져 있다. 구성원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말이다. 이견조율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를 하나 들었다. “지난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 성명을 낼 때 제가 경실련 전·현직 간부 40명에게 전화를 해 의견을 물었어요. 한 달에 한 번 하는 상임집행위원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최종 결정을 상임집행위원장과 정책위원장, 사무총장 셋에게 위임했어요. 제가 의견 수렴을 맡았죠. 40명 중 35명이 사퇴 성명에 찬성했어요. 성명 뒤에도 내부적으로 논란이 있었죠.”
앞으로 3년, 더 관심을 기울이고 싶은 분야가 뭔지 물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경제에 관심이 많아요. 경실련도 그간 이쪽 사업을 하자고 결의했는데 여력이 안 됐어요.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강화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봐요. 노동 정의 문제인 산재에도 관심이 많아요. 지난 3년 동안 매년 산재로 960~980명이 사망했어요. 크게 줄지 않았어요. 기업 이윤과 노동자 목숨을 바꾸고 있는 거죠. 노동운동단체도 이 문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더군요.”
그의 아내도 경실련 활동가 출신이다. 어디서 사냐고 묻자 임대주택이란다. “학교 다니는 딸 둘이 있어요. 내 집 마련은 포기했어요.”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 ‘위기의 순간’이 올 때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했다. “따른 거 하고 싶을 때도 많이 있었죠. 제가 떠나려고 할 때 단체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입학을 권유해 2002년 들어가 석사 학위를 받았어요. 1년6개월 공부하고 돌아오니 그동안 쉬었으니 이젠 일하라고 정책실장을 맡기더군요.”
가장 보람 있었던 활동 하나를 묻자 그는 주저주저했다. “거의 없었어요.” 그래도 하나 꼽으라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부동산 원가 공개 제도화 이런 거죠. 경실련 주장으로 수익형 민간투자사업(BTO)의 최소운영수입보장(MRG) 제도를 없앤 것도 기억 나요. 차도 안 다니는 도로 건설에도 수익 보장을 해줘 건설사에는 노다지 사업이었죠. 그때 제가 민간 투자로 건설한 도로 사업은 다 건드렸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