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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집주인이 ‘을’ 되는 ‘전세 무한연장법’이다?

등록 2020-06-14 16:23수정 2020-06-14 22:04

[박주민 의원 발의 ‘전세 무한연장법’ 둘러싼 오해]

- 집주인이 '을'로 바뀐다?
임대료 체납·주택 파손하면 계약 거절 사유
임대인 실거주·리모델링 등으로도 갱신거절권 보장돼

- 한국은 전세가 많다?
8년 전 월세 비율이 이미 전세 추월
시장 상황에 따라 전세 가격 상승 1% 수준도 가능
계약갱신청구권제를 설명 중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주민TV 유튜브 갈무리
계약갱신청구권제를 설명 중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주민TV 유튜브 갈무리

세입자에게 계약갱신권을 보장하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두고 ‘전세 무한연장법’, ‘재산권 침해’, ‘사회주의 발상’ 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전월세 가격 폭등이나 전월세 공급 축소에 대한 우려 등 유의미한 비판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상당수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침소봉대라고 지적한다. 박 의원 발의안을 계기로 점화된 임대차 계약갱신청구제와 관련된 대표적인 오해 3가지를 팩트체크 해 본다.

①임차인이 원하기만 하면 무조건 재계약? 임대인 갱신거절권 똑같이 보장

박 의원 입법안의 핵심은 임대차 재계약을 할 때 임차인에게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대차 계약기간만 2년으로 보장할 뿐, 재계약(계약 갱신)을 할 때 임차인 보호 규정이 없다. 임대인이 재계약을 거절하면 계약 기간 내 임대료 체납, 주택 파손 등의 과실이 없어도 무조건 퇴거해야한다. 계약갱신청구권이 보장되면 임대인은 재계약을 할 때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계약 연장을 해줘야 한다. 여기까지는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한 다른 의원들의 입법안과 똑같다.

다른 점은 계약 갱신 횟수다. 21대 국회 들어서자마자 발의된 주임법 개정안 가운데 윤후덕 의원은 갱신 횟수를 1회로 한정했다. 반면 박 의원은 이 횟수를 제한하지 않았다. 임차인에게 중대 과실이 없거나 임대인에게 정당한 사유가 없는 이상 임차인은 2년 마다 안정적으로 재계약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세 무한연장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다.

다만 임차인이 원하면 무조건 재계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임대료 체납, 주택 파손, 재임대 등 ‘임차인으로서의 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경우 임대인이 갱신 거절을 할 수 있다. 임대인이 실거주하거나 리모델링과 같은 재건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도 갱신 거절을 할 수 있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임대인의 갱신거절권도 명백히 보호하고 있다”며 “세입자단체 쪽에서는 오히려 갱신 거절 사유가 너무 폭 넓어서 임차인 보호가 미흡하다는 지적할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박 의원안은 갱신 ‘횟수’를 제한하지 않을 뿐 임대차 ‘기간’은 기존과 똑같이 2년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2년에 한번 임대인이 임차 상황을 점검해 계약 내용을 조정할 수 있다. 최근 박 의원 발의안과 관련해 유사한 사례로 거론되는 독일과 일본은 임차인 보호 수준이 훨씬 높아서 임대차 기간에도 제한이 없다. 한국과 상황이 달라서 비교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법무부의 계약갱신청구제와 관련한 연구 용역을 수행한 바 있는 김제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이사 비용, 아이 전학 등 퇴거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임차인이 임대인의 불공정한 거래에 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선진국은 민법에서 원칙적으로 기간 제한 없는 임대차를 규정하는 반면 한국은 임차인 지위가 너무나 취약한 상태다. 계약갱신청구권제 보장은 선진국의 아주 최소한의 기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②외국은 월세고, 한국은 전세라 안 된다? 8년 전에 월세가 전세 추월

계약갱신청구권제와 관련해 외국 사례를 반박하는 주된 논리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전세 위주의 임대차제도라는 점이다. 국토교통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전월세 비중은 2012년을 기점으로 역전돼 2016년부터는 60:40으로 월세가 전세 비중보다 높다.

전국 추세와 달리 전세 비중이 예외적으로 높은 곳이 서울 아파트다. 전문가들은 서울 아파트의 비정상적인 전세 비중은 주거안정을 위한 임차인들의 선택이 아니라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투자의 레버리지(지렛대)로 이용하는 ‘갭투자’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의 전세 비중은 72.4%로 월세 27.6%보다 2배 이상 높다. 실제 부동산정보업체 직방이 입주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전국 신축 아파트의 분양가 기준 전세가율(분양가격 대비 전세가격)을 조사해보니, 전국은 76.6%였고 서울의 전세가율은 86.3%에 달했다. 10억원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임차인이 8억6300만원을 부담하고 임대인은 1억3700만원으로 집을 소유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부본부장(변호사)은 “갭투자가 성행하면서 임차인 전세보증금이 전체 주택가격의 70%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 주택에 대해서 임차인이 더 큰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의미”라며 “한국적인 전세제도를 감안하더라도 임차인 권리에 견줘 임대인의 권리가 너무 큰 임대차제도의 불균형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서울의 전세 비중이 높은 것은 주거안정과 전혀 무관하다”며 “오히려 투기수요를 부추겨 집값 상승을 시키는 악순환의 고리에 전세제도가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유엔(UN)주거권 특보는 “전세 제도의 특성 때문에 임대인들은 빠르게 다주택자가 될 수 있었으며, 주택 시장은 금융화되고 가격은 상승하였다”며 주택 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5가지 중 하나로 전세 제도 폐지를 권고했다.

③전세가격 20% 폭등한다? 전월세 가격 안정 시기엔 1.67% 상승 그쳐

전세가격 상승 우려나 전세 공급 축소 등의 문제는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비롯해 임차인보호 3법의 주된 쟁점이다. 실제 노태우 정부 시절 전세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직전인 1989년 전세가격이 23.68% 올랐다는 사실이 주로 소환된다. 최근에는 지난해 법무부가 계약갱신청구권제가 전세가격 상승에 미치는 영향을 시뮬레이션한 연구용역 결과가 많이 회자된다. 이 보고서는 임대차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계약 갱신 횟수를 1회 보장(3년+3년)해 총 6년의 임대차 기간을 보장할 경우, 최대 21.57%의 임대료 인상이 예측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수치는 임대료가 연평균 11% 성장하는 ‘핫 마켓’(시장 과열)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임대료 성장률을 최저 2%~최고 11%로 상정해 시뮬레이션했는데 가장 극단적인 사례만 부각된 셈이다. 실제 임대료 성장률을 2%로 전제했을 때는 계약갱신청구권제 도입으로 인한 전세가격 상승폭이 최소 1.67%에서 최대 4.31%에 그쳤다. 해당 연구용역을 수행한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자산관리학)는 “전세가격이 많이 오르는 상황에서 도입하면 당연히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새로운 임대차제도가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며 “시장 상황에 따라 제도의 파급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핫 마켓보다는 콜드 마켓, 즉 임대차 시장이 안정됐을 때 도입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인데 보고서의 일부만 와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전월세 가격 움직임이 심상치 않지만 이는 전세 기간을 2년으로 늘린 1989년의 상황에 견주면 상대적으로 안정세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의 자료를 보면 당시는 1987년(19.4%) 1988년(13.2%) 등 두 자릿 수의 임대료 상승이 있던 시기였던 반면 2016년 1.3%(서울 2.0%), 2017년 0.6%(서울 2.0%), 2018년 –1.8%(서울 0.3%) 등으로 안정화되는 모습이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동안 전월세 가격이 안정돼 있다 보니 임차인 보호제도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가격이 오르면 오르니까 못하고, 안정되면 문제가 없으니 못하는 상황이 계속돼 왔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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