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17 부동산 대책’을 통해 경기도 대부분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지정하자 김포·파주 등 규제지역에서 제외된 곳의 집값이 급등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사진은 경기 김포 운양역 근처에 있는 ㅂ아파트 모습. 김포/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총선 끝나자마자 투자자들이 들어오더라고. 급매물은 광가속기 발표 나기 전에 소진됐어. 오창 사람들은 나주가 가져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외지인들은 여기 될 거를 알았나봐.”
지난달 30일 찾은 충북 청주 오창읍 ㄹ아파트의 한 부동산 대표 ㄱ씨는 투기세력이 청주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6·17 대책’보다 두달 이른 4월 중순부터 ㄹ아파트를 사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ㄹ아파트는 오창이 유치한 방사광 가속기 부지와 가장 가까운 아파트단지다. 당시 청주는 비규제지역이었기 때문에 2주택자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었고, 양도세·종합부동산세 부과 등에서도 다주택자 규제를 받지 않았다. 가격 급등은 5월8일 청주 오창의 방사광 가속기 유치 소식이 전해진 뒤 뚜렷해졌다. “5월8일 이후에는 가격이 급등했어. 집주인들이 배액배상(계약금의 2배 액수를 배상하고 계약을 파기하는 일)하는 일이 많아서 중개업소는 오히려 어려웠다니까.”
①청주 아파트 ‘2개’ 갭투자 매수… 물건처럼 집 쇼핑하는 투기세력
이 시기 들어온 매수자는 외지인이 다수다. 한국감정원 자료를 보면, 2020년 1~3월 27~28%를 오가던 청주의 외지인 매수 비중은 4월 37%로 급등한 뒤 방사광 가속기가 발표된 5월에는 44%에 이르렀다. 특히 4월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이 77%로 6천만원만 갖고 있으면 2억8천만원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던 시기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핫한’ 청주에서 오창 ㄹ아파트 ‘2개’를 매수했다는 갭투자 사례가 올라와 있다.
1~4월 2억8천만원이었던 ㄹ아파트(전용 84㎡)의 평균 거래금액은 5월 3억6800만원으로 급등했다. 5월 평균 거래금액을 웃도는 3억7천만원 거래가 나온 시점은 5월18일, 6·17 대책이 나오기 한달 전이었다. 6일 현재 나온 ㄹ아파트 매물 가운데 4억원을 밑도는 것은 없다. 6·17 대책 발표 이후 실거래 건수가 0건이고, ㄱ씨 역시 “파리가 날린다”고 말할 정도로 매수자가 뚝 끊긴 상황에서도 한번 올라간 호가는 떨어질 줄 모르는 것이다.
청주 ㄹ아파트 사례는 부동산 시장이 이미 과열된 지역만을 골라 규제지역으로 지정하는 정부의 ‘사후 규제’ ‘핀셋 규제’가 갖는 한계를 보여준다. 비규제지역을 돌며 ‘아파트 쇼핑’을 하는 투기세력과 속도전에서 정부는 늘 뒤처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풍선효과 탓에, 전국이 ‘투기판’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발까지 나오고 있다.
시장이 풍선효과에 익숙해지면서, 규제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주일 사이 투기세력이 몰리고 아파트값이 오르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6·17 대책에서 규제지역 지정에서 빠진 김포가 대표적이다.
②과열 없어서 규제지역 제외됐는데… 언론이 부채질하자 투기 현실화
“서울에서도 왔고, 지방에서도 왔고, 법인도 오고. 실거주 목적은 아니죠. 갭투자로 쓸어갔어요. 그것도 한 일주일 반짝했나? 투자금액이 1억 넘어가니까 싹 빠졌어요. 보세요, 여기 사람이 있나.”
지난 1일 찾은 김포 골드라인 운양역 ㅂ아파트 근처 부동산중개업소는 찾는 사람 없이 한산했다. 중개업소 대표인 ㄴ씨는 투기세력이 이미 ‘치고 빠진’ 상태라고 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김포가 규제지역에서 제외된 이유에 대해 “김포는 가격변동이 마이너스를 보일 때도 있는 등 과열 조짐이 없었다”고 말했다. ㄴ씨도 “골드라인이 개통됐는데, 왜 이렇게 잠잠하지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실제 ㅂ아파트의 1~6월 실거래가 자료를 보면, 1~5월에는 거래 건수가 오히려 줄고, 평균 거래금액도 3억5천만~3억6천만원으로 안정적이었다.
ㅂ아파트의 거래 상황이 출렁인 것은 6·17 대책 발표 직후다. 언론에선 김포가 규제지역에서 제외됐다며 풍선효과를 ‘예고’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언론의 예고는 곧장 현실화됐다. 6개월 동안 이뤄진 222건의 거래 건수 가운데 50% 가까운 100건이 6월17일 이후에 집중됐다. 6월16일까지 평균 거래금액은 3억5천만원이었지만, 6월17일 하루에만 8건의 거래가 이뤄졌고, 평균 거래금액도 3억7천만원으로 2천만원이 뛰었다. 18일 이후 첫번째 주말이었던 21일까지 나흘 동안 68건이 거래됐다. 김포를 찾은 1일 중개업소들 사이에서는 ‘1일 오후 김포가 규제지역 지정된다’는 지라시가 돌 정도로 규제지역 지정이 기정사실화한 상태였다.
③투기세력이 올려놓은 가격 떨어지지 않아…피해는 실수요자에게
중개업소 대표들은 김포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일부 역세권 대단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벌어진 일일 뿐 김포 주택 시장 전체가 과열된 것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운양동에 인접한 장기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 ㄷ씨는 “언론이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운양동 소형 평수를 갭투자로 싹쓸이 해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장기동은 아니다”라며 “값이 더 오르고 규제지역으로 지정될까봐 실수요자들이 서둘러 집을 사고 있다는 게 팩트”라고 말했다. 지난 4일 김포시청은 “김포를 규제지역으로 지정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건의문을 국토부에 보내기도 했다.
풍선효과가 정부의 핀셋 규제 탓인지, 무분별한 언론 보도 탓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부동산 시장에서 단기간에 투기세력에 의해 급등한 가격은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ㅂ아파트의 평균 거래금액은 지난 6월29일 4억1천만원을 찍었다. 집값 상승 기대감에 나온 ㅂ아파트 매물은 300여건에 이르지만, 호가는 모두 4억원 이상이다. ㅂ아파트는 전 가구가 소형 평수(59㎡)로 유치원·초등학교 아이들을 키우는 젊은 실수요자들이 몰리는 곳이다.
급등한 가격으로 인한 피해자는 조급한 마음에 ‘급매수’에 나서는 실수요자들이다. ㄴ씨는 “오른 값으로 산 실수요자들이 있다. 안 사면 그만인데, 어차피 오를 건데 지금이라도 사자는 사람들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 업소에는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찾는다는 전화가 여러 통 걸려왔다. 전화 내용의 절반은 ‘김포가 규제지역으로 지정되면 대출 비율이 얼마나 줄어드냐’는 것이었다. 규제지역(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면 주택담보대출 비율은 70%에서 50%로 줄어든다. 4억원 기준으로 자기가 마련해야 하는 자금이 1억2천만원(30%)에서 2억원(50%)으로 8천만원이 뛰는 것이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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