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제14화 강남아파트
제14화 강남아파트
비싸기로 유명한 강남의 타워팰리스를, 같은 강남구인데도 가난한 동네로 소문난 구룡마을에서 바라본 사진이다. 2009년에 김명진 기자가 찍었다.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풍경 같아 섬뜩하다. 앞으로 구룡마을도 개발된다고 하니 이런 모습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소득불평등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이젠 사교육으로 유명하다니
강남 이해하는 열쇳말은 ‘독식’ 수십년 동안 큰돈 투자받은 강남
다른 지역이 돈과 기회 양보한 것
사회 전체가 관심 가질 이유 충분 강남과 아파트와 <한겨레>, 1980년대부터 이야기해보자. 왠지 한겨레신문은 아파트 개발을 싫어했을 것 같다고 지레짐작하실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1988년 한겨레 창간호의 1면 광고가 무엇일까? 우성건설의 부평단지 아파트 분양광고였다.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안기부를 비롯해 모든 부처와 기관이 총궐기하듯 <한겨레>에 광고를 못 하게 노골적으로 탄압을 하던 때”였다고 2020년에 당시 광고를 집행한 우성건설 상무 조계현은 회상했다. “이른바 ‘빨갱이 신문’에 광고를 하는 업체엔 불이익을 주겠다”며 정부가 나서서 협박을 했다나. 조계현은 “고심 끝에 사장도 회장도 몰래 혼자 결단을” 내렸다. <한겨레> 창간호에 광고를 싣기로 한 뒤 “회장에게 사직서를 내고 두달간 도피 생활을” 했다. 회사도 조계현도 “안기부 등에 4번이나 사직서 낸 사실을 확인시키며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한겨레> 창간호 1면에는 우성아파트 부평타운의 광고가 실렸다. “가치가 다르고, 만족도 다릅니다.” 군사정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겨레>에 지면광고를 게재한 조계현은 1988년에 우성건설의 상무였다. 2020년에 김경애 기자가 찍었다. <한겨레> 창간호에는 부평 동아아파트와 주안 신동아아파트의 광고도 났다.
잊을 만하면 물난리 나던 동네 일간지 창간호 1면에 아파트 분양광고가 실린 점 역시 눈길을 끈다. 1980년대는 아파트가 ‘사랑받기’ 시작한 시절이다. 전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1960년대 말까지 아파트에 대한 저항은 완강했다. 정부는 아파트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마당이 없다거나 공동생활의 불편함이 크다는 것 등이 아파트를 꺼리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은 아파트를 사랑하게 되었다. “한국의 아파트 가구율은 세계 최고다. 70년대부터 지속돼온 아파트값 폭등 속도도 세계 최고일 것이다.” 2005년 <한겨레21>에 실린 강준만의 글이다.
서울에 살고 싶다는 사람은 조선시대에도 많았다. 그런데도 강남이 개발되지 않은 까닭은 비 좀 온다 싶으면 물에 잠기는 침수지역이었기 때문이다. 1973년에 소양강댐이 완공된 다음에야 본격적인 개발이 가능했다. 지면에 실리지 않은 소양강댐의 사진을 이번에 찾아 공개한다. 2012년에 김명진 기자가 찍었다.
강남 지역의 침수와 산사태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놀란다. 그런데 강남은 원래 물에 잠기는 동네였다. 너무 빨리 발전했기 때문에 깜빡 잊은 것이다. 강남역의 상습침수에 대해 서울환경연합 회원들이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물안경이 눈에 띈다. 김태형 기자가 2013년에 찍은 사진을 이번에 공개한다.
‘입시명문’ 학원들이 모이다
2008년 2월의 한밤중에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이종근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숨이 콱 막히는 것 같다. 2005년 7월의 한겨레 기사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밤 10시,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온 최아무개양은 ‘이러나저러나 학생들만 죽어난다’고 말하고는, 막 내리기 시작한 장맛비 속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1980년대와 90년대의 고등학생들은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이런 모습이 사라진 이유는 학생들이 입시지옥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학생들이 밤늦게 학원을 다녀야 하기 때문이었다. 서울 강남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모습이 1999년 <한겨레>에 실렸다.
투기수요일까 실수요일까 설마 집값을 유지하기 위해 강남 사람이 모두 짜고 거짓말을 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공교육도 사교육도 강남이 독식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강남을 이해하는 최고의 열쇳말은 ‘독식’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어느 집을 손질하고 개축하는 모습이다. 1999년에 이진홍 기자가 찍었으나 지면에 실리지 않은 사진이다. 아파트 재건축으로 한몫 잡으려는 생각은 가난한 동네도 부자 동네도 마찬가지다. 크게 증축하고 싶다는 강남 주민을 얌체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여파가 어떠할지는 걱정이 된다.
강남 개발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 이명박이다. 소양강댐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도 이명박이 일하던 현대건설이 지었다. 1977년에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이 일어났다. 이명박 일가가 이때 사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아파트 서너 채를 가로챘다는 의혹이 있다. 1990년대 말의 젊은 모습이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2002년에 재건축 승인이 났다. 시공사로 선정된 건설회사들이 현 수막을 걸었다. 그때 김종수 기자가 찍은 사진을 이번에 처음 공개한다. 그런데 2020년에도 은마아파트는 재건축을 시작하지 못했다. 초고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아 서울시와 마찰을 빚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남, 송파, 서초구 순의 통행량 “투기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1989년의 기사다. 2006년 기사는 요즘 이야기 같다. “강남 집값 상승의 원인이 실수요인지 투기 수요인지 아직까지 확실하게 가려지지 않고 있다. 집값 상승 원인에 대한 명확한 규명 없이 규제가 우선이냐 공급이 우선이냐는 논란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때와 달라진 면도 있다. 투기와 실수요를 구별할 놀라운 방법이 나왔을까? 그 반대다. 부동산 투자가 대중화되며 투기와 투자의 구별이 더욱 희미해졌다. “대중은 이제 ‘투기’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부동산 투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2018년 <한겨레21>의 기사다. 제목은 “3040 흙수저가 부동산 투기세력이 된 까닭”. 물론 계층이동을 꿈꾸는 젊은 ‘흙수저’를 투기꾼으로 매도하는 내용이 아니다. 누구는 투기꾼이고 누구는 실소유자라고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의미다. 강남 아파트라고 다를까. 아무려나 쉽지 않은 일이다.
2002년에 총리로 지명된 장대환. 인사청문회에서 자녀를 강남 학교에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시킨 문제가 불거졌다. “맹자 어머니가 교육 때문에 집을 세번 옮긴 일처럼 봐달라”며 사과했으나 끝내 총리가 되지 못했다. 탁기형 기자의 사진. 이후로도 위장전입은 청문회의 단골메뉴였다. 여야 인사 가릴 것 없이 자주 쓰던 편법이었나 보다.
“일부 지역에선 아파트 평수에 따라 어린아이의 친구들이 구분된다는 건 상식이다. 심지어 한국 최고급 아파트인 타워팰리스에도 아픔이 있다. 평수에 따른 차별 때문이라고 한다.” <한겨레21>에 실린 2005년 강준만의 글이다. 김종수 기자가 2002년에 찍은 타워팰리스의 위압적인 모습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수백조원 투입해 교통 인프라 집중 그런데도 강남의 아파트에 왜 우리는 관심을 가지나? 살기 편한 동네가 집값도 비싸다는데, 나는 무엇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걸까? 바로 그 ‘살기 편한’ 점이 문제다. 사람의 발길이 드물던 강남을 살기 편한 동네로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 전체가 비용을 지불했다. 위화감이니 우월의식이니 상대적 박탈감이니 하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강남을 개발하는 일에 진짜로 나랏돈이 들어갔다. “정부는 지난 수십년간 수백조원을 투입해 강남 지역에 교통 인프라를 집중시켰다.” 방금 인용한 2019년의 칼럼이다. 다른 곳에 돌아갈 기회가 강남에 대신 간 경우도 있다. 교육 인프라를 처음부터 지역마다 고르게 배분했다면 강남의 집값도 지금과 달랐을 터이다. 1988년의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목동 주민들이 질 높은 교육 기회를 탈취당한 손해가 이 지역 아파트값이 오르지 않아 입은 잠재적 재산 손실에 비해” 클 수도 있다.
정태수의 한보그룹은 1979년에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짓고 큰돈을 번다(역술인의 조언에 따랐다는 소문이 있다). 훗날 수서비리사건을 일으킨 것도 이때의 성공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정태수의 사무실도 은마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다. 재기를 꿈꾸며 2004년에 기자회견을 한 장소도 그곳이다. 황석주 기자가 찍었다.
고용불안과 입주민의 갑질에 시달리던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이만수 경비원은 2014년 가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재훈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이때 다른 지역은 강남을 비난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나? 이제는 다른 지역도 경비원을 해고하고 갑질로 괴롭힌다. 강남의 안 좋은 면은 다들 빨리도 배운다.
<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기사와 사진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시의성 있는 과거’와 관련한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한번도 소개된 적 없는 비컷(B-cut)사진 필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주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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