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철강·목재·펄프·합성수지 같은 원자재 가격이 올랐으나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해 원가 상승분을 온전히 보전받은 중소기업은 열곳에 한곳 꼴도 안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런 실태조사 결과를 공정거래위원회에 보내며 “공정위가 계획 중인 납품대금 조정실태 점검 추진 과정에서 중소기업이 납품단가 인상에 어려움을 겪는 업종을 중점 관리·조사 대상으로 선정해 면밀한 점검을 추진해 줄 것”을 건의하기로 했다.
9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6월28일~7월22일 원자재 가격 상승 폭이 큰 것으로 알려진 9개 업종(종이, 가구, 플라스틱, 기계·장비, 전기·전자, 철강, 비철금속, 레미콘, 승강기) 중소기업협동조합 회원사 64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원가 상승분 납품단가 반영 실태’를 보면, 응답 중소기업 가운데 96.9%가 지난해말 대비 올해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다고 밝혔다. 중기중앙회는 이들의 응답을 기반으로 평균 원가상승률을 26.4%로 추산했다.
원가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전부 반영’하고 있다는 응답은 6.2%에 그쳤다. 45.8%는 ‘반영 못함’, 47.8%는 ‘일부 반영’이라고 응답했다. 일부 반영이라고 응답한 중소기업들의 원가 상승분 대비 납품대금 반영 수준은 평균 31.4%로 추산됐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체와 주로 거래하는 승강기·레미콘·가구 업종 중소기업들의 ‘원가 상승분 반영 못함’ 비율이 각각 82.6%·59.9%·50.0%로 높게 나타났다. 비철금속 업종도 54.4%에 이르렀다.
원자재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54.7%가 ‘치열한 가격경쟁으로 단가 인상 요청 어려움’을 꼽았고, ‘거래단절 우려’(22.8%), ‘계약서에 조정 불가 조항 존재’(13.5%), ‘업계 관행’(5.9%)이 뒤를 이었다. 이와 관련해 원자재 상승분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필요’하다는 응답이 78.5%였다. 업종별로는 승강기(100%), 레미콘(83.3%), 철강(82.1%), 기계·장비와 비철금속(각각 78.0%) 등 원가 상승분의 납품단가 반영이 미흡한 업종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찬성 비율이 높았다. ‘불필요’ 응답은 3.9%에 그쳤다. 납품단가 연동제란 원가 상승분이 납품단가에 자동 반영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정부는 납품단가 연동제 대신 중기중앙회를 통한 납품단가조정협의제를 도입했다. 중기중앙회가 중소기업의 신청을 받아 납품단가 조정 협의에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67.5%가 신청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이유로는 ‘위탁기업과 원만한 거래관계 유지’(65.7%·중복응답), ‘협의 결과 불확실성’(51.5%), ‘신원 노출에 따른 거래단절 등 보복 우려’(27.0%), ‘공급원가 정보 공개에 대한 부담’(18.3%) 등을 들었다. 신청 의향이 ‘있다’(31.2%)고 응답한 중소기업들은 ‘중기중앙회의 협상력 활용’(69.8%), ‘직접 조정 신청을 하기엔 행정력·시간 등 부족’(54.5%), ‘언론 이슈화 등을 통한 업계 거래관행 개선 기대’(48.0%) 등을 기대 효과로 꼽았다. 납품단가조정협의제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61.1%가 ‘개별 중소기업의 신청 없이 협동조합이 대기업 등과 협상할 수 있는 권한 부여’를 건의했다.
양찬회 중기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원가 상승에도 납품대금 인상에 비협조적인 업종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중점 실태조사 업종으로 선별해 강력한 현장조사와 시정조치를 하고,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중소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해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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