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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중기·스타트업

원자재값 올리고 납품가 후려치고…“중소기업은 죽어납니다”

등록 2021-06-08 04:59수정 2021-06-08 08:59

인터뷰 홍성규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코로나 빌미 납품단가 혹독하게 깎아
대기업은 실적 좋아지나 중기는 악화
납품단가 조정협의 제도도 실효없어
대기업이 이행 안해도 과태료 ‘찔끔’
불공정 행위 땐 처벌 강화하고
정기 실태조사 위한 기구 상설화를
홍성규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이 5월24일 경기도 구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전선 업종 중소기업들의 처지를 하소연하고 있다.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제공
홍성규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이 5월24일 경기도 구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전선 업종 중소기업들의 처지를 하소연하고 있다.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제공

“원자재 공급업체도 대기업이고, 제품 납품업체도 대기업입니다. 원자재 공급 대기업들은 가격을 올리고, 제품을 납품받는 대기업들은 가격을 후려칩니다. 중소기업만 중간에 끼어 죽어납니다.”

지난달 말 경기도 구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홍성규(58)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의 이야기는 대기업들 사이에 끼어 낭패를 보는 전선(케이블) 생산 중소기업의 하소연이다. 전선을 만들려면 구리와 컴파운드(절연재료) 등이 필요한데, 컴파운드에 들어가는 원재료(PVC 레진 등) 공급을 틀어쥔 게 한화·애경화학·엘지화학 등 대기업들이다. 취급 품목 가운데 일부(전체 물량의 30% 가량)를 중소기업에 하청 주는 전선업체들(대한전선·엘에스전선)뿐 아니라 전선 제품을 사가는 전력회사·통신사·건설사 등 수요업체도 모두 대기업들이다.

앞서 지난달 12일 중소기업중앙회 주관으로 열린 ‘중소기업 제값받기, 무엇이 바뀌어야 하나’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홍 이사장은 “전선의 원재료인 구리, 피브이시(PVC), 에틸렌 등의 가격이 지난해 대비 두 배 급등한 상황에서 원재료 생산 대기업은 인상된 가격을 일방적으로 중소기업에 통보하고, 전선 수요처인 대기업은 원재료 인상분을 제대로 반영해주지 않는다. 현장은 아우성을 치고 있다”며 “대기업에서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해주더라도 차일피일 미루거나 일부만 반영해줘 체감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 “요즘 대기업은 원가자료 요구하지도 않는다”

제어·계장(기계 컨트롤용) 전선 및 특수 케이블 등을 전문 생산하는 진영전선 대표이기도 한 홍 이사장은 전선 납품으로 연간 3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중소기업(익명 요청) 사례를 들어 현실을 설명했다. “컴파운드 공급가가 지난해 연말 이후 6개월도 안돼 두배 올랐습니다. 가격을 인상한 지 두달도 안돼 또 올린다고 통보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요. 인상 근거도 설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주 일방적으로 가격을 올리면 어찌하냐고 하소연해봤자 들은 척도 하지 않아요. 군소리 하면 중국업체에 준다고 으름잘을 놓기까지 하죠. 어쩔 수 없이 납품업체와 수요업체에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고 알려주며 납품가와 입찰가에 반영해달라고 요청해보지만, 다음달에 생각해보자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홍 이사장은 이어 “요즘은 납품을 받는 대기업들이 하청 중소기업에 원가자료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원가 대비 납품가가 터무니없이 낮고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원자재 공급체제가 흔들리면서 엄청 올랐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원가 자료 갖고는 할 말이 없으니, 대신 다른 중소기업을 끌어다 경쟁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납품가를 낮추려 해요. 입찰 한 상태에서 납품가를 한번 더 낮추며 ‘싫으면 빠지세요’라는 태도를 보일 때도 많습니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제값 받기, 무엇이 바뀌어야 하나?’ 토론회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뒷줄 왼쪽서 세번째가 홍성규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제값 받기, 무엇이 바뀌어야 하나?’ 토론회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뒷줄 왼쪽서 세번째가 홍성규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홍 이사장은 “중소기업들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한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컴파운드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미국 텍사스주 쪽에 몰아닥친 한파 영향이 커요. 텍사스주 쪽에 컴파운드 원료를 만드는 화학공장이 몰려 있습니다. 이제는 한파 영향이 거의 끝나 그동안 올랐던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야 할 차례인데, 원자재 공급업체들은 가격인하를 차이피일 미루고, 납품업체들은 국제 원자재 가격 인하를 근거로 납품가 인하를 요구하는 상황이 예상된다는 겁니다.”

■ ‘납품단가 조정협의’ 제도…“실효성 없다”

굳이 전선 업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홍 이사장은 “사실 따지고 보면, 전선 업종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업종 중소기업들과 자동차 업종의 3~4차 하청업체 등도 마찬가지 상황”이라며 “대기업이 코로나19 대유행을 빌미로 납품단가를 더욱 혹독하게 깎으면서, 대기업 실적은 더욱 좋아지고 중소기업 사정은 더욱 나빠져 양극화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감하는 중소기업 대표들이 많을 거예요. 중소기업 대표 중에는 지방에 있는 공장 근처에 원룸을 얻어놓은 이들이 많아요. 회사 사정이 안좋아지면 집에는 바빠서 못들어온다고 해놓고, 원룸에 가서 텔레비전 틀어놓고 벽에 반쯤 기댄 자세로 밤을 지새며 한숨만 쉬다 옵니다. 회사 사정이 안좋은 걸 가족한테도, 직원들한테도 말을 할 수 없어서예요. 중소기업 직원들은 회사 사정이 안좋다고 하면 떠날 궁리부터 하거든요.”

중소기업들을 이런 처지에서 벗어나게 할 방법은 뭘까.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상생협력법을 근거로 ‘납품단가 조정협의’ 제도를 도입하는 등 나름대로 애쓰고 있지만, 홍 이사장은 “실효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상생협력법에 원가연동 조항이 있어 원가가 오르면 그에 맞춰 납품단가를 올려주게 돼 있고, 거부하면 중소기업중앙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게 돼 있긴 해요. 문제는 납품단가 조정 신청을 하려면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다, 대기업이 조정협의 결과를 이행하지 않아도 과태료 최대금액이 2억원밖에 안된다는 겁니다. 실효성이 있겠어요?”

홍 이사장은 “중소기업 쪽에서는 물량 줄이기 등 보복이 두려워 납품단가 조정협의 신청을 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보복행위를 금지하고 처벌 조항도 있지만 역시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워서다. “분명한 보복행위인데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기업이 해당 중소기업에 갑자기 물량을 2배 배정했다고 가정해봐요. 중소기업 쪽에선 갑자기 물량이 갑자기 늘어나면 납기를 지키기 어려워요. 품질검사를 깐깐하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분명한 보복행위지만, 어떻게 입증해요.”

■ “사는 쪽 불공정행위도 처벌 강화해야”

대신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두가지를 제안했다. 먼저 공정거래법을 활용하는 방안이 있다. “파는 쪽의 담합 행위 사례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처럼, 사는(납품받거나 입찰받는) 쪽의 불공정 행위 사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위반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면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어요.” 두번째 방안은 중기중앙회 차원에서 정부의 정책 담당자, 대기업·중소기업 대표, 전문가, 언론 등으로 ‘불공정행위실태조사’ 기구를 꾸린 뒤, 각 협동조합별로 대표적인 갑질 행위 대기업 한두곳씩을 제보하게 하는 방식으로 정기적이고 실질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대기업 최고경영자나 오너 회장들이 아무리 동반성장과 불공정행위 근절을 외쳐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중소기업을 상대하는 부서 임원의 목표를 조정해줘야 바뀔 수 있어요. 대통령과 장관 등이 나서서 대기업에 중소기업과 동반성장을 주문하고 힘 있는 국회의원 주관으로 제값받기 토론회가 열려봤자 별로 기대안하는 게 이 때문입니다.”

구리/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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