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바닥에 도달했다는 신호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1998년 8월에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지불유예)를 선언했다. 외환위기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던 우리 시장 입장에서 엄청난 악재가 터진 것이다. 아시아에 이어 유럽 신흥국까지 위기 상황에 내몰렸으니 위기가 세계적으로 번질 게 뻔하고, 그러면 그 악영향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300에 머물고 있는 코스피가 150까지 떨어질 거란 전망이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러시아 모라토리엄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가 러시아 국채에 잘못 투자하는 바람에 망하고 말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긴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소집해 예정에 없던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할 정도로 파급 효과가 컸다. 외환시장도 요동을 쳤다. 엔-달러 환율이 147엔까지 올라갔고, 그 해 말에 180엔이 될 거란 전망이 힘을 얻었다.
러시아 모라토리엄 직후 코스피가 열흘 정도 하락해 290이 됐다. 그리고 반전이 일어났다. 엄청난 악재가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더 이상 하락하지 않았다. 이미 주가가 너무 낮아져 주식을 팔려는 사람들이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낮은 가격에 주식을 파느니 끝까지 가보겠다는 심리가 발동한 것이다.
한 달이 지난 9월 말부터 주가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떨어지지 않자 투자자들이 이제 주가가 바닥에 도달했다는 생각을 했고, 그게 주가를 밀어 올리는 힘이 됐다. 주가의 방향이 바뀌자 상승에 속도가 붙어 1999년 중반에 코스피가 1000을 넘었다. 불과 8개월 사이에 350% 가까이 상승한 건데, 우리 주식시장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크게 오른 기록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시장에서 어떤 상황이 되어야만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요즘 상황과 관련해서는 물가가 안정되어야만 주가가 오를 거란 얘기가 그에 해당한다. 이는 절반만 맞는 얘기다. 경제 변수의 변화는 주가 변화를 사후에 확인해 주는 역할을 할 뿐 방향 전환을 감지하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물가가 안정됐을 때에는 이미 주가가 크게 올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변수 변화보다 앞의 경우처럼 주가를 통해 주가를 판단하는 게 더 맞을 확률이 높다. 시장에 악재가 쏟아지는 데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 주식시장이 바닥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높은 물가, 환율 불안, 경기 침체, 금리 인상까지 온갖 악재가 쏟아지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만 보면 주가가 하락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 영향으로 주가가 고점에서 35% 가까이 떨어졌다. 최근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크게 밀리지 않고 있다. 2100대 중반에서 하락이 저지되고 있는데, 투자자들이 이 정도면 주가가 내려올 만큼 내려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은 주식을 내다 팔 때가 아니다. 매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판단만큼 어려울 때 참고 견디는 인내가 중요하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에는 버티는 게 최상책이다.
주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