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접근성 높은 투자 길잡이지만
일반인에게 생소한 용어 가득
기관투자자 대량주문 겨냥
개인투자자 배려 뒤로 밀려
연구원들 2~3일마다 보고서
글 쉽게 다듬을 여유 없어
일반인에게 생소한 용어 가득
기관투자자 대량주문 겨냥
개인투자자 배려 뒤로 밀려
연구원들 2~3일마다 보고서
글 쉽게 다듬을 여유 없어
“지난 1개월간 제약업종 지수 KOSPI 수익률 15%p Outperform, 3개월 수익률은 46%p Outperform하며 초강세. 업종 PBR도 과거 최상단에 도달한 만큼 단기적으로 추가 상승을 기대하기 부담스러움. 그러나 주요 상위 제약사 수출호조와 기술료 유입으로 2Q 어닝 모멘텀 우수.”
ㄱ증권사 리서치센터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아웃퍼폼’(Outperform·주가 상승률이 시장 평균을 웃도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면 더 읽어내려가기 어렵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를 찾는 개인투자자들은 늘고 있는 데 비해, 보고서의 내용이 유독 외국어와 어려운 금융용어가 많아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달에 많게는 3000건가량 쏟아져나오는 증권사 리서치센터 연구원(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는 기업·산업의 실적과 전망, 시장 흐름을 종합해 이 종목을 사야 하는지 팔아야 하는지, 목표가격까지 제시하는 투자의 길잡이다. 뜬소문이 난무하는 주식시장에서 얼마 안 되는 ‘공신력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보고서를 열어보면 개인투자자들은 낯선 용어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에 당혹스럽다. 보고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모멘텀’(실적 등 주가 추세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근거), ‘베어마켓랠리’(주가가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반등장세), ‘오버웨이트’(overweight·비중 확대) 등은 증권가에서는 흔히 쓰이는 용어지만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주로 외국어로 표기돼 있어서 ‘토씨만 한국어’인 경우도 적잖다. ‘이머징마켓’(신흥시장), ‘YoY’(전년 대비 증감률) 등 한글로 쉽게 순화할 수 있는 표현도 그대로 쓰인다. 중요한 투자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를 주당 순자산가치로 나눈 값) 등과 같이 기업 가치 판단에 중요한 정보는 안전한 투자를 위해 투자자 스스로가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지만, 지나친 전문용어 사용은 개인투자자의 이해를 방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사 보고서가 ‘어려운’ 이유는 연구원들이 독자를 개인투자자가 아닌 기관투자자로 상정하고 글을 쓰기 때문이다. 리서치센터는 연구조직으로 스스로 이윤을 창출하지는 못한다. 보고서를 펀드매니저 등 기관투자자들이 읽고 증권사에 대량 주문을 내야 회사에 수익이 발생한다. 보고서의 주된 활용목적이 전문가인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영업자료’이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의 이해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연구원 개인의 노동강도가 높은 것도 한 요인이다. 통상 한 연구원이 10개 이상의 기업을 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간 100편가량 된다. 휴일을 제외하면 2~3일에 한편씩 보고서를 내는 셈이다.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보니 개인투자자들은 보고서에서 기업에 대한 상세 분석을 읽는 것을 포기하고 ‘매수·매도’ 의견과 ‘목표주가’를 확인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2014년 1월부터 올해 5월18일까지 발간된 유가증권시장 관련 증권사 보고서 2만9349건 중 35건(0.1%)만이 ‘매도’ 의견을 냈다. 업계에선 법인영업팀에서 리서치센터 예산을 많게는 절반 이상 부담하고 있는데다, 연구원 개인들이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정보를 기업에서 얻기 때문에 기업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는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일반인들에게 투자용어는 암호에 가깝다. 이전에는 영업점에서 거래해 직원의 도움을 받았지만, 지금은 인터넷·모바일로 직접 거래하는 이들이 늘어 애널리스트 보고서의 중요성은 더 높아진 상태”라고 말했다.
증권사 스스로도 이를 알고 자정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증권은 2010년부터 개인투자자를 위한 보고서를 따로 발간하고 있으며, 한화증권은 최근 언론인 출신 ‘편집국장’ 제도를 도입해 보고서의 전달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애널리스트 보고서 매수·매도 의견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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