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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증권

“적법한 합병”이라는 삼성, 삼양그룹에 한번 물어보라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5-06-23 02:33수정 2022-08-19 17:21

[더(The) 친절한 기자들]
유구한 전통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 단 ‘1~18일’만의 시가로 밀어붙여
합병비율 유리하게 결정했던 삼양홀딩스는 피합병회사 주주들 항의 수용해 변경
“적법성보다는 적정성” 귀 기울여야…‘시어머니’ 금감원의 이례적 침묵 ‘씁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안건을 둘러싼 갈등이 법정 공방과 주총 표 대결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이번 액션이 주주자본주의냐, 투기자본주의냐라는 해묵은 논쟁에 대한 판단은 독자 여러분 각각에 맡기고, 여기서는 원인 제공자인 삼성그룹의 선택에 미시적인 초점을 맞춰 거시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개해 볼까 합니다.

삼성 쪽은 지난 19일 법정 변론에서 “주가는 시장 참여자들의 평가가 종합된 가장 객관적인 가치로, 상장법인간 합병 비율이 주가를 따르는 건 법에 명확히 규정된 명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돼 있으므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시행령(176조의5)에 의거해 주식시장에서 거래된 시가를 바탕으로 산출한 기준주가를 합병 가액으로 삼았습니다. 이에 따라 제일모직(기준주가 15만9294원)과 삼성물산(5만5767원)의 합병 비율은 1대 0.3500885로 나왔지요. 이 말은 삼성물산 100주를 가지고 오면 합병 뒤에 제일모직 35주로 바꿔준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삼성물산 일부 주주들은 시가가 아닌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합병 비율을 재산정해야 한다는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지요. 올해 1분기 사업보고서를 보면 제일모직의 자산은 8조1833억2800만원, 삼성물산의 자산은 26조1555억6500만원으로 나옵니다. 증권사들은 제일모직의 주당 순자산가치를 3만9000원대, 삼성물산의 주당 순자산가치는 8만6000원 안팎으로 추산합니다. 제일모직이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삼성물산을 집어 삼키는 모양새입니다.

삼성물산의 합병 가액을 기준으로 계산한 시가총액(9조원대)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4.1%) 삼성SDS(17.1%) 삼성엔지니어링(7.8%) 등 계열사들의 지분 가치(10조~12조원)에도 못미칩니다.

시장가격이 항상 합리적이면 엘리엇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

그럼에도 두 회사의 합병 가액과 합병 비율 산정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삼성의 주장은 일단 맞습니다. 하지만 정교하지 못한 법 조항의 문제점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가액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이사회 합병 결의일(2015년 5월 26일)의 전날(5월 25일)을 기산일로 삼아 소급해서 1개월간 가중평균종가, 1주일간 가중평균종가, 최근일의 종가를 산술평균한 가액으로 산정됐습니다. 자꾸 산수가 나와 더 이상 읽기 싫다구요? 상식적으로 말씀드릴게요. 기준시가를 산출하는 기간으로 주어진 최장 1개월은 너무 짧습니다. 증시 휴장일을 제외하면 실제 거래일은 18일 밖에 안되더군요. 아무리 시장 가격이 중요한 지표라 하더라도 단 18일간의 주가로 유구한 전통을 가진 두 회사의 기업가치를 재단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게다가 최근일(5월22일)은 단 하루에 불과한데도 두 합병 회사의 기준시가를 결정하는 데 무려 33%(3분의1)의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이번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에게는 회사에 주식을 팔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주식매수청구 가격을 산정할 때는 최장 2개월간의 가중평균가격까지 고려하도록 했으며 하루에 불과한 문제의 최근일은 가격 산정에서 배제시켰습니다.

또 합병가액 계산때 적용하는 ‘종가 평균’이라는 규정에도 함정이 숨어있습니다. 종가는 당일 거래된 시초가, 고가, 저가 등 수많은 거래가격의 하나일 뿐입니다. ‘진짜 평균’은 가격대별로 거래량을 곱한 뒤 총거래량으로 나누어야 나오지요. 상장 기업이 유상증자를 할때 결정하는 신주 발행가액은 대부분 이러한 방식으로 산정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종가를 기준으로 잡아놓으면 이해관계가 있는 특정집단이 인위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게 상대적으로 쉬워지지 않겠습니까? 두 회사의 합병 발표가 나기 전에 시장에서는 “삼성물산 주가가 오를만 하면 막판에 누군가 찍어누른다”는 푸념 섞인 이야기가 돌기도 했답니다.

시장은 일시적으로 왜곡되거나 오작동을 일으켜 기업 가치 평가에 혼선을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시장가격 만능론은 위험합니다. 시장이 항상 합리적으로 움직인다면 틈새를 노리는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애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삼양홀딩스 42일만의 ‘변심’…그 사이에 무슨 일이?

합병의 적법성만을 강조하는 삼성의 우회로는 없을까요? 과거의 숱한 합병 사례를 살펴보면 실마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삼양그룹의 합병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참고로 삼양은 라면으로 유명한 삼양식품과는 다른 화학·식품·의약을 주력 부문으로 갖고 있는 그룹입니다. 삼양그룹의 지주회사인 삼양홀딩스는 지난 2012년 10월26일 삼양제넥스와 합병을 결의하고 합병 비율을 1대 0.3853으로 산정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비율(1대 0.3500885)과 엇비슷하네요. 삼양홀딩스가 삼양제넥스에서 분할되는 투자사업부문을 흡수합병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42일 뒤인 그해 12월7일 합병 가액을 변경하고 합병 비율을 1대 0.8391로 조정하는 정정 신고를 냈습니다. 이에 따라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피합병 회사인 삼양제넥스의 합병법인 지분율은 2배가 넘게 높아지고 이에 따라 삼양홀딩스 지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데도 삼양그룹 지배주주들은 이같은 불리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부가 지식이 필요합니다. 삼양홀딩스와 삼양제넥스는 이미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었지만 삼양제넥스에서 분할되는 투자사업부문만 따로 떼내 기준주가를 산정하기가 곤란합니다. 따라서 삼양제넥스 투자사업부문은 비상장회사로 간주합니다. 자본시장법은 상장법인이 비상장법인과 합병하는 경우에는 상장법인의 합병 가액을 기준시가와 자산가치 가운데 높은 가격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즉 기준시가가 자산가치에 못미치면 자산가치로 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당시 삼양홀딩스는 기준주가(6만4200원)가 주당 자산가치(13만9802원)보다 크게 낮아 자산가치를 합병 가액으로 정했습니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적법하게 산정한 것이지요. 하지만 합병 상대방인 삼양제넥스의 주주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삼양홀딩스의 합병 가액이 기준주가보다 크게 높아지면서 합병 비율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보게 됐다고 판단한 삼양제넥스 주주들의 항의와 민원이 잇따랐습니다. 결국 삼양제넥스는 삼양홀딩스에 합병 가액을 시가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달하게 됐고 삼양홀딩스가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 당국이 삼양홀딩스에 2차례에 걸쳐 합병신고서를 정정하도록 요청한 것도 합병 가액 변경에 영향을 줬을 것입니다.

법조문상의 형식논리보다 합병절차의 공정성이 중요

삼양그룹의 합병 사례에 대해 삼성의 입장에서는 결국 기준시가를 합병 가액으로 최종 결정했다는 점에서 우리랑 다를 게 뭐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삼양그룹 사례가 주는 교훈은 합병 가액 산정방식이라는 법조문상의 형식논리보다는 상대 회사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균형감 있게 고려하는 합병 절차의 공정성에 있다고 봅니다. 즉 ‘적법성’만큼 ‘적정성’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삼양홀딩스가 당시 밝힌 합병 정정 사유는 삼성이 귀담아들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등 외부전문가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 이번 합병은 특히 상대방 회사가 삼양홀딩스의 자회사라는 지위를 고려해 볼 때, 적법성과 함께 적정성을 고려함에 있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중략) ‘삼양’ 기업집단 전체의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효율성이 제고됨으로써 지주회사인 삼양홀딩스의 기업 가치가 증대되는 효과를 고려해 볼 때 삼양홀딩스의 합병 가액을 변경해서 진행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삼양홀딩스 및 삼양홀딩스 주주 등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합병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합병 완료 전까지 수차례 정정공시를 내는 지난한 산고를 겪습니다. 정정 사유의 상당수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두 회사의 합병 가액과 합병 비율의 변경입니다. 변경의 방향은 대부분 피합병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모아집니다.

우문일 수도 있겠지만 삼양그룹에 2차례에 걸쳐 정정명령을 내린 바 있는 금융감독원이 합병 비율을 둘러싼 이해의 충돌이란 점에서 성격이 유사한 이번 삼성 계열사의 합병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끝으로 삼성이 합병 가액을 기준시가에서 자산가치로 바꾸는 ‘위법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병 비율을 변경할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자본시장법은 상장법인이 합병 가액을 산정할 때 기준시가에서 100분의 30, 이번 삼성의 사례처럼 계열회사간 합병의 경우에는 100분의 10의 범위에서 할인 또는 할증한 가액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일모직의 합병 가액에서 10%를 할인함과 동시에 삼성물산의 합병 가액에서 반대로 10%를 할증한다면 합병 비율은 1대 0.3500885에서 1대 0.427886으로 22% 가량 변경됩니다. 물론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자들의 동의가 필요하겠지요.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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