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의 흐름읽기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주가는 물론 원자재, 환율, 금리까지 모든 가격 변수가 요동을 친다. 금융위기 때를 보면 알 수 있다. 유가가 배럴당 145달러에서 30달러로 떨어졌다. 원-달러 환율은 906원에서 1517원으로 올랐고, 종합주가지수는 2050에서 938로 하락했다. 속도도 굉장히 빨라서 이 모든 변화가 8개월 사이에 일어났다. 위기 가능성이 높아지면 투자자들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처분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가격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지난 1년간 원자재 가격이 제일 많이 하락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서 44달러까지 떨어진 데에서 보듯 원자재 중에서 가격이 절반 이하로 내려가지 않은 품목을 찾기 힘들 정도다. 다음은 환율이다. 신흥국 통화의 변동이 특히 심했는데, 평균 40% 넘게 절하됐다. 환율보다는 덜하지만 연초 이후 이머징마켓 주가 지수도 17% 가까이 하락했다. 반면 금리는 안정을 유지했다. 그리스 사태가 정점을 향해 치달을 때는 물론,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졌을 때 조차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이런 차이가 생긴 건 투자자들이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어서다. 가능성이 높다면 최우선적으로 채권을 매도해 자금을 안전한 선진국으로 이동시켰을 것이다. 부분적인 이동은 있었지만 금융위기 때같이 과민한 반응은 없었다. 자산별로 자금 이동에 대한 반응도가 다른 점도 역할을 했다. 원자재처럼 수급에 민감한 투자 대상은 균형이 조금만 어긋나도 가격이 급변한다. 반면, 수요층이 두꺼운 채권은 자금 이동에 둔감하다. 이런 움직임을 종합하면 시장은 경기 침체에 따른 위기 발생 가능성보다 금리 인상에 따른 자금 이동 가능성을 보다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위기’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중국 경기 둔화로 원자재 수요가 줄면서 신흥국에서 부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그 내용이다. 그 근거로는 50% 이상 하락한 원자재 가격과 신흥국 환율의 대폭 절하가 제시된다. 타당성이 있지만 모든 자산 가격이 폭락한 과거 위기 때와 차이가 있다. 현재는 위기로 넘어가는 단계라기보다 가격 체계가 재편되고 있는 과정으로 보는 게 맞다. 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을 줄이는 작업이 예고돼 있는 만큼 가격도 그에 맞게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
주식시장이 극심한 변동에서 벗어나고 있다. 주가 상승과 함께 내부적인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주가 반등이 시작된 지난 2주간 대형주의 상승이 돋보였다. 어려울수록 가장 좋은 기업에 투자하자는 심리가 발동한 때문인데, 시장은 외부 변동을 종목 선택을 통해 흡수하고 있는 것 같다.
이종우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이머징마켓 주가지수·채권지수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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