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의 흐름읽기
지난 반년간 외국인은 주식과 채권을 동시에 내다 팔았다. 올해 초에 특히 심했는데 50일간 채권 보유액이 6조원 가까이 줄어들 정도였다. 중간에 2조3000억원의 만기 상환액이 있었던 걸 감안하더라도 순수 매도 금액이 3조5000억원을 넘는다.
외국인이 주식과 채권을 모두 내다판 건 아주 드문 경우다. 그동안 주식은 매수, 매도가 제각각 이었지만 채권은 꾸준히 사들였다. 2013년 하반기가 유일하게 예외였는데 외국인이 4개월간 8조원 가까이 채권을 내다 팔았다. 당시 외국인이 채권을 매도한 건 금융정책 변경 때문이었다. 2013년에 미국은 양적 완화를 중단하려는 연준과 이를 막으려는 시장이 충돌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미국의 정책 변경과 상관없이 금리 인하가 검토되고 있었다. 상반기에 양적 완화 유보와 금리 인하가 이루어지자, 정책 변화를 염두에 두고 채권을 사들였던 외국인이 매도에 나서 순매도를 기록한 것이다. 반면 최근 외국인 채권 매도는 경기 둔화가 주요인이다. 신흥국에서 위기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중국 경제가 침체됨에 따라 우리 채권시장에서도 위험을 줄이는 작업이 진행됐다.
1월 말에 외국인의 주식 매도가 끝났다. 지금은 매수, 매도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있다. 과거 같으면 매수 금액이 작아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텐데, 워낙 오랜 시간 매도를 겪은 뒤여서 인지 약간의 매수에도 주가가 반응을 하고 있다. 이번주부터는 외국인들이 채권도 사들이고 있다. 규모가 크지 않아 아직 매수 지속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지만 주식, 채권 모두를 내다 팔던 상황이 마무리된 것 같다.
환율이 외국인 매매의 변화를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이다. 원-달러 환율이 절하되는 동안 외국인들은 매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국채 금리가 1%대 중반에 불과한 상황에서 환율이 한 달 사이에 3% 넘게 움직인다면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채권을 파는 게 맞기 때문이다. 주식도 사정이 비슷하다. 작년 하반기 이후 종합주가지수 변동폭이 10%로 낮아지면서 환율에 따른 영향이 주가만큼 커졌다.
지난 20년간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처럼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경우를 제외하고 원-달러 환율이 1250원을 넘은 적이 없었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정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위기를 걱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환율을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의지도 확고해 당분간 원-달러 환율이 1250원을 넘는 일이 없을 걸로 전망된다. 원화가 추가 절하되지 않는다면 지금은 반대로 환차익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수급이 시장 전체를 바꾸진 못해도 하락을 막는 역할은 한다. 주가가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외국인 매도 감소가 긍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종우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외국인의 주식·채권 누적순매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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