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여의도 한화투자증권 사옥에서 김일구 리서치센터장이 투자자 신뢰 확보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 제공
“중요한 건 ‘아이티(IT) 버블’ 같은 위기의 순간에 투자자들한테 정확한 분석을 제공하는 거죠.”
국내 증권사 가운데 해당 기업의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봐 주식을 팔라고 권하는 이른바 ‘매도보고서’를 가장 많이 내는 곳은 한화투자증권이다. 그래봐야 6.9%(지난해 4월~올해 3월말 기준)에 그치지만 국내 증권사가 내는 보고서 중 매도 의견이 채 1%가 안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낮지 않은 비율이다. 주식을 ‘팔라’는 보고서는 증권사 영업에 도움이 안 될 뿐더러 해당 회사의 반발을 사기 십상이다. 고약한 회사들은 때론 경영과 관련한 정보 제공을 아예 거부하거나 보고서 내용을 삭제하라는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지난 23일 여의도 한화투자증권 사옥에서 만난 김일구(49)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평소 매도 보고서를 많이 내지 못하더라도 신뢰를 얻으려면 중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투자자에게 경고를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화증권은 지난해 6월 삼성물산 합병 당시 대부분의 증권사 보고서가 ‘합병 시너지’를 강조한 상황에서도 나 홀로 ‘소액주주를 위한 투자전략’ 보고서를 냈다. 합병법인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으니 합병이 되면 주식을 팔라고 권하는 내용이었다. 김 센터장은 “일부에서 압박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애널리스트의 객관적 의견을 듣고 싶어한다. 모두가 ‘간신’만을 원하는 건 아니다. 애널리스트들이 그 점을 믿고 소신껏 보고서를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1995년 장은경제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한 김 센터장은 굿모닝신한증권(현 신한금융투자), 대우증권 채권분석부장, 씨티은행 웰스매니지먼트(WM)상품부 리서치담당부장 등을 거치며 채권·거시경제 전문가로 이름을 높였다. 지난해 6월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에 투자전략팀장으로 합류했고 올해 4월부터 리서치센터장을 맡고 있다.
‘소신 보고서’를 통한 “투자자 신뢰”를 강조한 배경엔 업계 환경의 변화도 자리하고 있다. 그는 “증권업의 수입원이 주식매매중개(브로커리지)에서 자산관리로 넘어가면서 장기 투자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짧게 사고 파는 고객한테는 당장의 가격등락이 중요하지만, 연금상품을 포함해 긴 호흡의 투자를 하는 자산관리 고객들에겐 돈을 ‘이 증권사에 오래 믿고 맡겨도 된다’는 신뢰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화증권은 투자자 신뢰를 높이려 지난해 6월 리서치센터 안에 따로 ‘편집팀’을 뒀다. 난수표처럼 보이는 기업·시장 분석 보고서를 개인투자자들이 좀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다. 기자 출신 편집팀장을 포함한 7명의 인원이 외래어나 전문용어를 순화해 보고서를 윤문한다. 대형 증권사는 어느 정도 정착된 시스템이지만 애널리스트가 9명에 불과한 중형사에서 따로 편집팀을 두는 건 찾아보기 힘들다. 김 센터장은 “개인투자자들은 증권사가 기관투자자만을 위해 일한다는 불신이 크다. ‘어려운 보고서’도 이런 불신을 키우는 데 한 몫을 했다”며 “‘쉽게 썼으니 직접 읽고 판단해달라. 우리는 투자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개인에게는 말하지 않고 기관에만 알리는 정보는 없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한다”고 말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