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 늦출 이유 없다”…내부 이해관계자 거래 의혹 파악 나서
금융당국이 호재 공시 다음날 악재성 재료를 ‘늑장 공시’한 의혹을 받고 있는 한미약품의 위법 여부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일 ”시장의 혼란을 초래한 한미약품의 공시가 미공개정보 이용 행위 등 불공정거래 여부에 해당하는지 면밀히 조사해 위법사실이 발견되면 신속히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30일 오전 9시29분 다국적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지난해 7월 맺었던 항암제 ‘올무티닙'의 기술수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고 공시했다. 갑작스러운 악재 공시에 투매성 물량이 쏟아져 나와 이날 한미약품 주가는 18.06% 추락한 채 연중 최저치(50만8000원)에 마감했다. 특히 악재 공시 하루 전인 29일 장 마감 뒤에는 미국 제넨텍과 1조원 규모의 표적 항암제 기술수출 계약을 했다고 공시했던 터라 충격이 배가됐다. 그러나 한미약품 쪽이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것은 29일 저녁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김재식 한미약품 부사장은 2일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회사 쪽 공시담당자가 지난달 30일 오전 8시 30분에 한국거래소에 도착해 관련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늦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거래소 쪽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거래소 공시부 관계자는 “상장사는 거래소에 찾아올 필요도 없이 회사에서 공시시스템에 접속해 관련 내용을 입력할 수 있다”며 “공시가 접수되면 거래소는 문안의 표현과 형식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한 뒤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곧바로 공시를 내보낸다”고 말했다.
29일 저녁에야 계약해지 사실을 알게 돼 공시가 하루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한미약품 쪽의 주장에 대해서도 거래소는 “공시는 마감 시간이 따로 없다”며 “특히 이번처럼 주가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에 대해서는 연락만 주면 밤늦게 언제라도 이른바 ‘올빼미 공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거래소 공시부는 지난달 29일부터 한미약품이 의도적으로 공시를 늦춘 것은 아닌지 파악하기 위해 다각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한 공정공시 의무 규정 위반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시부의 조사와 별개로 거래소 시장감시본부는 내부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를 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감시본부 관계자는 2일 “악재 공시가 뜨기 전인 장 개시 30분 동안 한미약품과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하거나 공매도를 쳐 부당이익을 챙긴 세력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의 지난달 30일 공매도량은 10만4327주로 한미약품이 상장된 2010년 7월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평균 공매도량은 4850주다.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공매도를 하기 위해 미리 주식을 빌리는 대차계약 수량도 급증해 26만2658주에 달했다. 전날 대차수량은 3만4387주였다.
이날 투자자 매매 동향을 보면 기관이 36만주를 순매도한 반면 개인은 37만주를 순매수했다. 기관과 외국인이 팔아치운 물량을 고스란히 받아간 개미 투자자들의 손실이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이관순 한미약품 대표이사가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본사에서 열린 신약 ‘올무티닙’에 대한 임상연구 부작용 사망사례 등과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앞서 한미약품은 지난달 29일 표적항암제를 기술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호재성 공시를 한 뒤 다음날인 30일엔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이전한 또다른 표적항암신약 ‘올무티닙’의 개발이 중단됐다는 악재성 공시를 내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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