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기업의 주가를 움직이는 힘은 둘이다. 하나는 실적, 다른 하나는 가격. 실적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생략하고, 가격은 주가의 높낮이를 의미한다. 대형주처럼 부도가 날 가능성이 희박한 주식의 경우, 가격이 낮아지면 실적에 관계없이 주가가 오르기도 한다. 이미 큰 손실이 난 주식을 무리하게 팔기보다 상황이 좋아질 때를 기다리며 보유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선주가 그랬다. 매 분기마다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고, 수주도 과거 평균의 30%에 불과해 주가가 떨어질 요인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은 배 가까이 올랐다. 더 이상 나빠질 일이 없다는 기대가 작용한 것이다.
이 국면이 끝나면 실적이 역할을 한다. 주가 상승으로 저가 메리트가 사라지면서 실적에 맞춰 주가가 움직이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으로 상승 동력이 가격에서 실적으로 넘어오는 중간에 일정기간 주가 조정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익과 주가가 맞는 수준이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는 올 상반기 대형주 주가를 결정하는 중요 변수가 될 것 같다. 지난해 대형주 주가가 많이 올라, 가격이 낮은 주식을 찾기 힘들어졌다. 실적이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됐는데, 이익이 늘어나는 종목과 그렇지 못한 종목 사이에 주가 차별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화학주는 2년 전 낮은 가격으로 주목받았던 첫 번째 대형주다. 2015년 초에 주가가 바닥을 치고 1년 가까이 올랐지만, 지난해에는 이익 전망이 불투명해 지지부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주가와 가격 수준, 그리고 실적간 관계가 작용한 것이다. 올해는 은행, 조선, 건설주 등이 비슷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모두 지난해 주가가 크게 오른 업종들인데, 주가를 뒷받침해줄 정도로 이익이 늘어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낮은 가격을 기반으로 또 다른 종목이 상승 대열에 들어오기도 할 것이다. 이미 자동차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지난해 11월부터 주가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까지 절하된 게 큰 역할을 했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현대차 주가가 13만원 밑으로 내려가지 않을거란 생각도 상승 동력이 되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상승 종목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상당수 대형주들의 주가가 이미 올랐기 때문인데, 이들 가운데 실적이 의미있게 증가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 대형주가 빠진 공간을 중소형주가 채울 수도 있지만 그 숫자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형주와 중소형주의 가격 결정 요인이 달라서인데, 중소형주는 가격이 낮아져도 매수가 바로 늘어나지 않는다. 대형주와 달리 주가가 낮아질 경우 회사가 부도가 나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같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종우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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