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사이 가격이 많이 오른 상품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석유다. 지난해 10월 이후 40% 넘게 올랐기 때문이다. 유가가 이렇게 상승한 건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원유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서 공급이 부족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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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008년에도 유가가 급등한 적이 있다. 사상 최초로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했는데 신흥국의 석유수요 증가가 원인이었다. 2008년 신흥국의 하루 평균 석유수요는 직전 연도에 비해 120만 배럴 늘었다. 이는 해당기간 선진국의 수요 감소분 24만 배럴의 5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반면 공급 증가는 미미했다. 1985년부터 2003년까지 저유가가 계속된 결과로 생산 시설이 늘어나지 않아 공급 증가가 소폭에 그쳤다. 이런 수요와 공급의 차이가 가격 상승을 초래한 것이다.
최근에 유가가 상승하면서 배럴당 100달러 전망이 다시 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세 자릿수 유가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서부텍사스 중질유(WTI)기준으로 배럴당 90달러가 한계점이 아닐까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2008년보다 수요가 줄어든 반면 공급은 늘었기 때문이다. 2008년에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12%대였다. 인도, 러시아, 브라질도 높은 성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6%대로 낮아졌다. 다른 신흥국은 위기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석유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급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미국의 세일 오일을 보면 알 수 있다. 2008년에는 존재가 미미했었는데 지금은 석유 공급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유가 상승은 기업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이어서 주식시장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현실은 다르다. 일정 수준까지는 유가와 주가가 같이 오르다가 한계점을 지난 후에는 방향이 달라지는 게 일반적이다. 직전 상승기인 2004년 이후도 2007년 10월 유가가 배럴당 80달러가 될 때까지는 주가가 올랐지만 80달러를 넘은 후에는 하락했다. 이런 흐름은 유가 상승의 이면에 경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유가가 낮을 때는 경기 회복의 영향력이 유가 상승을 압도해 주가가 오르지만 유가가 높아진 후에는 그 관계가 뒤바뀐다.
지금까지는 유가와 주가의 관계가 괜찮았다. 둘이 같이 상승했는데 유가가 높지 않고 경기도 좋아 생긴 현상이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둘의 관계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WTI 기준으로 배럴당 90달러는 2007년에 주가와 유가의 방향이 바뀐 분기점이다. 이번에는 유가 상승 동력이 과거보다 약하다.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보다 공급 감소가 가격을 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력이 약한 만큼 유가와 주가 사이에 분기점이 빨리 올 수도 있다.
이종우 주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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