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제약 임직원 가족들(위쪽)이 매월 넷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여가활동 프로그램에서 직접 만든 케이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아래는 팬택계열 임직원 자녀들이 회사에서 마련한 2주짜리 원어민 교사 영어캠프에 참여해 자신들이 만든 영어 작품을 자랑하고 있다. 사진 대웅제약, 팬택계열 제공
‘일중독’ 피로 쌓이는데 아직도 쥐어짜십니까?
온라인 장터인 옥션의 최상기 커뮤니티팀 부장은 지난해 12월 한달을 휴가로 보냈다. 5년째 지금 회사에서 근무한 최 부장은 처음 유급휴가 얘기가 나왔을 때 ‘누가 가겠냐’ 싶었다. 예전에 근무했던 대기업도 비슷한 제도가 있었지만 쉽게 휴가를 쓸 수 없었다. 회사는 최 부장에게 휴가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회사일에 정신없이 매달렸던 최 부장은 휴가 초반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30일 동안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으며 재충전을 했다. 최 부장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칠 타이밍이었다”며 “장기 근속한 사람들을 대우해 주는 것 같아 근무의욕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유한킴벌리 “생산성 3~4배로”
최근 각 회사에서 이른바 일과 삶의 조화(워크 라이프 밸런스) 프로그램 도입이 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일과 일 이외의 영역인 가족, 여가, 자기계발 및 교육의 균형을 맞출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안식휴가제, 변형근로제, 직원상담제도, 직원학습제도, 가족친화경영(탁아지원, 출산휴가, 육아·간병 휴직)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국내에서 일과 삶의 조화 프로그램을 가장 잘 운영한다고 평가받는 회사는 유한킴벌리다. 유한킴벌리에서 사무직은 출퇴근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고, 생산직은 4조2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직원 개인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프로그램(EAP, Employee Assistance Program)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85명이 상담을 받았다. 유한킴벌리 김천공장의 김선희(28)씨는 “근무체제가 3조3교대제(하루 3개조가 매일 8시간 근무)에서 4조2교대제(2개조가 매일 12시간씩 4일 근무하고 4일 휴무)로 바뀐 뒤 가정생활에 충실할 수 있고 자기 발전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채택하고 있다. 풀무원은 15년, 20년 장기 근속자에게 각각 부부 동반으로 제주도와 해외 여행을 보내준다. 에스케이㈜는 정신과 전문의, 심리상담사, 재테크 컨설턴트, 한의사 등이 돌아가며 상담을 해주는 하모니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또 근무한 지 5년이 넘은 부장급 이상 직원들에게 최장 1년까지 안식년을 제공한다.
휴먼경영연구원 박정렬 박사는 “과거에는 직장에서 돈을 많이 주면 더 열심히 일한다는 게 보편적인 인식이었지만 지금은 돈보다 중요한 것이 많아졌다”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 주어야 직원들이 이런저런 고민을 덜고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유한킴벌리 이은우 전무는 “일과 삶의 균형 프로그램 도입 이후 이직률이 0.2%로 떨어지고 생산성은 3~4배 높아졌다”고 말했다.
직장인들 ‘균형점수’ 47.5점 그쳐
아직까지는 많은 직장인들이 이런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휴먼경영연구원이 올해 3월10일부터 4월10일까지 직장인 25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직장인들은 일과 삶의 균형점수를 100점 만점에 47.5점으로 매우 낮게 평가했다. 이 연구를 담당한 박정렬 박사는 “조사 결과 일과 삶의 조화가 직무관련 변수(회사만족·직무몰입·스트레스)와 상관관계가 매우 높았다”고 말했다. 일과 삶의 균형 프로그램은 서양적인 가족친화 기업의 개념이 확장된 것으로 영국은 최근 정부 차원에서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시행하고 있는데, 구글의 경우 직원들에게 아침식사는 물론 체력단련시설을 마련해주고 세탁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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