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직원에 인공시술비 지원…
“가족과 보내라” 칼퇴근 시키고
가족친화 직장이 생산성도 높아
“가족과 보내라” 칼퇴근 시키고
가족친화 직장이 생산성도 높아
#1. 11년째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다니는 노영철(가명·39) 과장은 결혼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다. 이른바 불임 부부다. 적잖은 돈이 들어가는 불임 치료를 받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 부부는 지난해 12월 회사의 지원으로 인공수정 시술을 받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해부터 불임 직원들을 위해 인공수정 시술비용 2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시술을 받는 여성 직원들에겐 1주일 유급휴가(남성 직원은 1일)를 준다.
#2. 신한은행 직원들은 1주일에 두차례, 오후 6시가 넘으면 ‘정시 퇴근’을 해야 한다. 매주 수요일엔 오후 6시 이후 회의와 야근, 회식을 없앴다. 지난 4월 은행은 이날을 ‘족(族) 프로 실천의 날’로 명했다. 가족과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라는 뜻에서다. 매주 금요일도 퇴근시간을 지켜야 한다.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자기계발에 힘쓰라는 뜻에서 ‘격(格) 프로 함양의 날’로 정했기 때문이다. 요즘 신한은행에선 이른바 ‘3 프로 되기 운동’이 한창이다. 일만 잘하는 사람은 ‘하수’, 일과 가정을 다 잘 챙기는 사람은 ‘중수’, 여기에다 자기 품격까지 높인 직원은 ‘상수’로 평가받도록 했다.
일명 ‘홈퍼니’(Homepany)가 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홈퍼니는 말 그대로, 직원들이 일과 가정을 잘 양립시킬 수 있도록 배려하는 가족친화 기업을 뜻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늘면서 주목받는 경영기법이다. 사내 보육시설 설치 등 육아활동에 대한 지원이나 원활한 가족관계를 돕는 휴가제도, 탄력적 근무시간제 운영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가족친화 경영에 팔을 걷어붙였다. 엘지전자 비즈니스솔루션(BS)사업본부는 지난 8일 어버이날을 맞아 모든 직원이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직원들의 편지는 사업본부장 명의의 편지 및 케이크와 함께 각 가정으로 배송됐다. 에스케이그룹은 주말마다 직원 가족들에게 사옥을 개방해,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즐기거나 북카페에서 책을 읽도록 배려한다. 지에스리테일은 65살 이상 부모님을 모시는 직원에게 매달 20만원의 효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가족친화 경영은 직원들의 고민을 해소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으로 번지고 있다. 삼성토탈은 15일 충남 서산에 위치한 회사 소유의 3층짜리 건물을 사원자녀교육센터로 오픈했다. 200석 규모의 학습공간과 체력단련실 등을 갖춘 센터에는 직원 자녀들의 진로상담 등을 해줄 전문 카운슬러도 뒀다. 상대적으로 교육환경이 열악한 지역 여건을 고려한 조처다. 신한은행 등 일부 기업은 직원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해 가족간 불화 등에 대한 상담을 무료로 지원한다.
중소기업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화장품업체 코스트리는 오는 22일 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와 가족친화 기업 제도설계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할 예정이다. 이 회사 인사부의 정근태 차장은 “직원의 절반가량이 여성이다 보니, 이들이 근무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부부간 대화법’ 등을 주제로 한 강연에 직원 및 배우자들을 초청한 선보공업은 부사장이 직접 가족친화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기업들이 가족친화 경영에 나서는 것은 경영성과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독일 헤르티에재단의 연구결과를 보면, 가족친화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생산성이 30%가량 높다. 지난해 14곳에 가족친화 기업 인증을 부여한 보건복지가족부는 “인증기업 직원들의 직무만족도가 대체로 높게 나타났으며, 경영성과도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기업들의 가족친화 경영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화여대 강혜련 교수(경영학과)는 “국내에선 아직 가족친화 경영을 모성보호 혹은 복리후생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데, 초일류기업들은 우수한 인재를 확보·유지하는 전략으로 삼고 있다”며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직원들에게 단시간 근로 청구권을 부여하는 등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해 국내 기업 939곳을 대상으로 가족친화 지수를 측정한 결과를 보면 44점(100점 만점)에 그쳤다. 이에 가족친화 경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논의도 꿈틀대고 있다. 최근 노사정위원회 산하 ‘일·가정 양립 및 여성고용촉진위원회’는 육아부담 완화방안, 가정과 조화되는 근로시간제도 정착방안 등을 논의한 뒤, 7월까지 노사정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직원자녀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도 개방
하나은행 ‘푸르니 어린이집’
하나은행에 다니는 진수정(서초중앙지점 가계사업팀ㆍ36)씨는 매일 오전 7시40분께 41개월된 딸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그가 먼저 들르는 곳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집 부근의 ‘하나 푸르니 신길 어린이집’이다. 지난해 10월부터 그는 이곳에 아이를 맡긴 뒤, 은행으로 출근한다. 진씨가 보육비로 들이는 돈은 매달 19만원. 일반 구립 어린이집 수준이다. 그는 “일반 어린이집에 비해 훨씬 저렴한데다 교사들이 일일이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줘서, 근무할 때 한결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이곳은 국내 최초로 민자유치를 통해 지어진 지역 보육시설이다. 하나금융그룹은 지난해 하나 푸르니 신길 어린이집을 지어서 영등포구에 기부체납한 뒤, 20년간 위탁운영을 맡겼다. 건축비 등으로만 30억원을 들였고, 매년 추가로 운영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진씨처럼 하나은행에 다니는 직원들외에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맞벌이 부부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정원 138명의 40% 가량만 하나은행 직원의 자녀들이다. 가급적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다. 아침 7시30분부터 저녁 7시30분까지 운영하며, 부모들의 요청에 따라 밤 9시30분까지 연장보육도 실시하고 있다.
하나금융공익재단 관계자는 “임직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보육시설 건립은 기업의 복리후생 차원으로 그칠 우려가 있다” 며 “출산율 저하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구현 차원에서 보육시설 운영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하나금융 쪽은 내년 하반기에 반포 부근에도 비슷한 형태의 어린이집을 개원할 예정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홍승아 연구위원은 “기업의 보육정책이 지역사회로 확장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하나금융그룹은 지난 2003년부터 대교, 한국아이비엠, 엔에이치엔, 포스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5개 기업과 공동으로 출자한 직장보육시설 ‘푸르니 어린이집’을 운영해오고 있다. 현재 서초, 일산, 분당 등 3곳에서 총 500여명의 직원 자녀들이 이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황보연 기자
기업들의 가족친화 경영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화여대 강혜련 교수(경영학과)는 “국내에선 아직 가족친화 경영을 모성보호 혹은 복리후생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데, 초일류기업들은 우수한 인재를 확보·유지하는 전략으로 삼고 있다”며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직원들에게 단시간 근로 청구권을 부여하는 등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해 국내 기업 939곳을 대상으로 가족친화 지수를 측정한 결과를 보면 44점(100점 만점)에 그쳤다. 이에 가족친화 경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논의도 꿈틀대고 있다. 최근 노사정위원회 산하 ‘일·가정 양립 및 여성고용촉진위원회’는 육아부담 완화방안, 가정과 조화되는 근로시간제도 정착방안 등을 논의한 뒤, 7월까지 노사정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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