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 직원들이 2009년 서울 삼성동 포니정홀에서 인문학 교육과정의 하나인 ‘판소리의 미학’ 수업 시간 중 판소리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제공
일반사원 대상 미술·건축·사상사 등 강의 많아져
CEO 위주 교육서 탈피…“통찰력·사고력 키운다”
CEO 위주 교육서 탈피…“통찰력·사고력 키운다”
롯데백화점의 이선대 홍보팀장은 회사가 서울대학교와 공동으로 마련한 인문학 강좌 과정을 지난해 수료했다. 8주 과정으로 진행된 이 강좌에서 이 팀장은 인도 신화와 한국 문학, 현대 미술, 이집트 건축처럼 경영이나 마케팅과는 별 관련이 없는 인문학 과목들을 수강했다. 이 팀장은 “교육이 토요일에 이뤄져 처음에는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과정을 이수하고 보니 흔치 않은 귀한 기회였음을 알게 됐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하반기에는 일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인문학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간 최고경영자(CEO) 중심으로 이뤄지던 기업들의 인문학 교육이 일반 직원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지금까지 기업들의 인문학 교육이라고 하면 주로 최고경영자들을 위한 코스로 받아들여져 왔다. 인문학적 소양은 주로 기업 경영의 방향을 정하는 최고경영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란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6번째로 주최한 최고경영자 독서모임, 삼성경제연구소가 2005년부터 열고 있는 인문학 특강 ‘메디치21’ 등이 대표적인 최고경영자 대상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여러 기업들이 실무진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신입사원 272명을 대상으로 인문학 교육을 실시했다. 엔씨소프트는 매달 두차례씩 부장급 이상 직원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열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은 정보기술(IT) 기업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누리꿈 지식경영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직장인 대상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휴넷은 11일부터 온라인 인문학 교육인 ‘행복한 인문학당’(www.happyinmun.com) 서비스를 시작했다. 교보문고와 함께 문학·역사·철학 등 각 분야 전문가로 이뤄진 고전 선정위원단을 구성해 대표 고전을 선정했다. 1차로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사기>, <서양철학사>(버트런드 러셀), <구운몽>,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백년 동안의 고독>, <목민심서>, <서양미술사>(언스트 곰브리치) 등 9개 강좌가 개설됐고, 내년 상반기까지 강좌를 100개로 늘릴 계획이다. 휴넷 관계자는 “예전에는 인문학 강의가 임원 교육에만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한데다 수강료도 비싸고 오프라인 위주였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팀장 등 실무진에도 인문학 강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 경영에 인문학적 소양이 도움이 된다는 인식도 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월 최고경영자 회원 4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7.8%가 ‘인문학적 소양이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사람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어서’가 39.6%, ‘종합적인 사고력과 판단력을 길러주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30.1%였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기술뿐만 아니라 인문학(humanities)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것도, 기업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확산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하지만 기업 인문학 교육이 더욱 보편화될지는 미지수다. 휴넷이 최근 기업 교육담당자 13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98%가 ‘직원들을 위한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현재 인문학 교육을 진행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90%가 ‘아니요’라고 답했다. 진행하지 않는 이유로는 ‘다른 더 중요한 직무 교육에 집중해야 해서’가 46%로 가장 많았고, ‘교육과정이 없어서’가 32%로 그다음이었다.
롯데백화점 인사팀 관계자는 “인문학 교육 도입은 최고경영자가 주도했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이 있다”며 “인문학 교육을 한다고 해서 바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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