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미생>. 그림 위즈덤하우스 제공
‘이끼’ 그린 윤태호 작가
포털 다음 연재만화 시즌1 끝나
조회수 6억번 기록 등 인기
직장인들 “내 처지와 너무 비슷”
포털 다음 연재만화 시즌1 끝나
조회수 6억번 기록 등 인기
직장인들 “내 처지와 너무 비슷”
안아무개(33) 대리는 회사 내에서 몰래 돌려보는 만화책이 있다. 임원이나 부장에겐 말하지 않는다. “선배가 읽어보라고 줬는데, 정말 무릎을 치며 봤죠.” 그때 손에 잡은 만화 <미생>에 푹 빠진 그는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정말 그대로 묘사돼 순식간에 읽는다”고 했다.
오 차장 : “나는 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했어. 우리 팀이니까 따라 와주기 바라지만…. 동아줄 같은 거 잡는 거 아니야. 사내 게임에 빠지게는 안할거야. 내가 우산이 될 거야.”
천 과장 : “잘하면 팀도 승격될 수 있는 건데요.“
김 대리 : “장그래씨도 정식 사원이 될 수도 있겠죠.”
오 차장 : “우리가 자신할 수 없는 이야기잖아.”
<미생>은 대기업 상사에 ‘사장 낙하산’으로 입사한 계약직 사원인 장그래의 좌충우돌을 그린 만화다. 고졸 출신 장그래가 ‘정식 사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뛰지만, 회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미생’은 완전히 살아있지 못한 상태를 말하는 바둑 용어다. 히트작 <이끼>를 그린 윤태호 작가가 1년7개월가량 온라인 포털 다음에 연재해 이달 ‘시즌1’이 끝났다. 조회수 6억번과 12만개의 댓글을 기록했고, 영화와 드라마화도 준비중이다.
흔한 연애 이야기나 ‘판타지’ 하나 없이 회사에서 벌어진 일을 그렸는데도 인기를 끈 것은 회사원들이 실제 체감하는 직장 생활과 공감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장그래가 ‘회사가 어떤 곳인지 알아갈 때’ ‘신입사원이 한팀이 되어갈 때’ ‘사내 정치에서 선배의 좌절을 볼 때’ ‘계약직의 한계를 느낄 때’ 등의 장면은 직장인을 울리고 웃긴다. 안 대리 역시 “실제로 우리 회사에선 정규직 직원과 결혼한 파견직은 정규직이 되고, 일 잘하는 계약직은 결국 정규직이 못되고 짐을 쌌다.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 장그래를 볼 때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포털 다음 웹툰에 있는 <미생> 댓글의 반응도 비슷하다. 한 누리꾼은 장그래가 정규직이 되기 힘든 것을 깨닫는 장면에선 “눈물이 앞을 가려 마지막까지 겨우 보고 화장실로 뛰어가 눈물 쏟고 나왔습니다. 장그래의 처지와 현재 제 처지와 너무 비슷해서…. 14일, 저의 정규직 전환이 결정됩니다”라고 댓글을 썼다.
직장에서 연애하고, ‘재벌 2세’인 실장님의 경영권 승계 싸움만 나오는 드라마와 달리 <미생>은 ‘리얼하다’는 얘기다. 실제 서울 종로의 대기업 사무실엔 파견직과 계약직, 정직원이 섞여 일하고, 울산의 현대자동차에선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이 안 돼 여전히 철탑에선 노동자가 고공농성 중이다. <미생>도 계약직에게 잘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식의 희망 따윈 주지 않는다.
<미생>은 더 나아가 내밀한 ‘사내 정치’까지 파고든다. 장그래의 상사인 오 차장은 앞과 옆을 챙기지 않아 승진이 느리다. 오 차장은 마침내 거래 업체에 ‘인사차’ 이익을 챙겨주고 뒷일을 도모하자는 한 임원의 은밀한 제안을 받는다. 오 차장은 자신을 믿는 팀원을 위해 사내 게임에 뛰어든다.
중견기업 임원인 최아무개(42)씨는 <미생>을 볼 때 이 부분이 실감났다고 말했다. “회사에선 다 자신의 일이 급하고 소중한데, 누가 어떤 지원을 해주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그만큼 ‘썩은 동아줄’이 아닌 ‘진짜’를 가진 임원을 만나야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는 기업들이 2007년~2008년 인수합병(M&A)을 한 사례를 보면 50% 정도가 실패했는데, 대부분 부서가 통합될 때 부서장이 누가 되느냐 등 조직적인 갈등이 문제였다고 했다. 최씨는 “전쟁터인 직장에선 뜻 맞는 사람과 일하는 게 자산이라는 것을 만화에서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만화를 통해 직장 생활을 배우는 것은 일본에서 30년째 연재되고 있는 베스트셀러 만화 <시마과장>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시마과장>은 주인공인 시마 고사쿠가 일본의 파나소닉을 모델로 한 ‘하츠시바 전기’에 입사해, 과장-부장-이사를 거쳐 사장까지 오른 이야기를 그린 만화다. 시마는 일본 전자 산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샐러리맨 신화’를 이루며 사장이 된다.
직장인들은 <미생>이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고도 성장기 일본 기업과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힘든 정규직 취업과 더 치열해진 사내 경쟁이 ‘샐러리맨 신화’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 것이다. 작가 윤태호씨는 “한국 사람들은 왜 힘들어하면서도 대기업에서 일하나, 대기업에서 일하는 게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내년에 쓸 시즌 2에서는 일반 회사가 어떤지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디 ‘Republic’씨는 <미생> 종결의 아쉬움을 “미생이 그린 한국의 대기업과 그 조직문화가 그동안 장점이 많았지만, 미래에는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대주주와 그 주변의 전횡, 봉건성, 불투명함, 비윤리성 등. 화이팅! 시즌2”라고 댓글을 달았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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