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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직장·취업

‘런닝맨’이냐고요? 직원 연수중입니다

등록 2014-01-13 16:32수정 2014-01-14 11:02

‘피터공‘(이승택·뒷줄 맨 오른쪽)과 ‘애련공’(임애련·아랫줄 맨 왼쪽) 등 놀공발전소 직원들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사무실에서 게임에 쓰이는 소품을 들고 자세를 잡고 있다.
‘피터공‘(이승택·뒷줄 맨 오른쪽)과 ‘애련공’(임애련·아랫줄 맨 왼쪽) 등 놀공발전소 직원들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사무실에서 게임에 쓰이는 소품을 들고 자세를 잡고 있다.
게임으로 직원교육 ‘놀공발전소’
미션#1 강남서 지구 구할 백신을 찾아라
“연수원으로 가는 버스가 고장 났습니다. 모두 버스에서 내리세요.”

이른 아침, 버스에서 내린 34명의 회사원 얼굴에서는 단잠을 뺏긴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들은 그룹에서 선발된 우수 직원들로, 10일 간의 ‘창의 교육’을 받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어리둥절해하며 버스에서 내린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황색 봉투와 태블릿피시. 사회자는 “여러분은 강의장에 앉는 대신 강남역 일대를 원없이 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왜냐고는 묻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황당한 표정의 회사원들이 황색 봉투를 열어보니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4시간 안에 바이러스 해독제’를 찾으라는 명령이 쓰여져 있다. 게임이 시작됐다.

이승택 놀공발전소 대표가 지난 10일 잠깐 노트북으로 보여주던 동영상을 정지시켰다. 그는 “갑자기 버스에서 내리라고 하고, 서점하고 마트에 가라고 하니 황당하지 않겠어요”라고 웃었다. 이 동영상은 2011년에 진행된 삼성그룹의 한 연수 프로그램이다. 게임이 시작된 동영상은 숨가빴다. 해독제 단서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은 직원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강남역 주변을 헤집고 다녔다. 게임을 진행한 놀공발전소는 서점 등 군데군데에 힌트를 숨겼다. 직원들은 힌트를 따라 강남역 대형서점에 있던 책이 해독제임을 밝혀내고 임무를 완수했다.

“뛰는 것만 보면 텔레비전 프로그램 <런닝맨>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하하 웃자고 만든 게 아니라, 게임을 통해 일상적인 공간을 새롭게 경험하게 해서, 익숙한 공간과 사고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목적이다.”

이승택 대표는 놀공발전소가 하는 게임에 대해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먼저 이 동영상을 보여줬다. 놀공발전소는 삼성그룹 인재개발원과 함께 색다른 창의교육 프로그램을 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 끝에 이 게임을 만들었다. 이 대표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려면 새로운 곳으로 맨날 출장을 가야 하느냐. 이 게임은 일상으로부터 탈출이 아닌 일상으로의 탈출을 의도한 것”이라고 구조를 설명했다.

일상적 공간을 놀이장소로 재해석
익숙한 사고 탈피 창의력 향상 꾀해
삼성·현대·금감원 등에서 교육 요청

밥먹으며 수다 ‘게임 발명 원동력’
다음 과제 괴테 ‘파우스트’ 알리기

놀공발전소가 의도한 게임은 목표에 적중했다. 이 대표는 “참가자들이 게임이 끝난 뒤에 전에는 무심코 걸었던 길이었는데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더라”고 소개했다. 게임을 통해 일상을 다시 보게 해서 “‘이것 해도 될까’ ‘상사가 뭐라고 하지 않을까’를 벗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사실 위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교육방식”이라고 했다. 직원들을 연수원으로 불러다가 하는 대기업의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탈피한 시도인 셈이다. 덤으로 이 게임에선 ‘조는 직원’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10일 찾은 놀공발전소는 또다른 ‘일상으로의 탈출’을 계획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지난해엔 금융감독원 직원 연수, 미래에셋금융 직원 연수, 현대자동차 마케팅 캠프 등을 진행했고, 올해 초엔 삼성전자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만화책으로 가득찬 사무실 한쪽 벽면에선 흰색 칠판 위에 게임 동선을 짜느라 한창이었다. ‘창의력 담당’이라고 명함을 건넨 최용하씨는 “흥미를 느끼면서도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중”이라고 했다.

‘창의력’을 증진하는 게임을 만드는 고민 자체가 창의력이 필요할텐데 라는 걱정이 들었다. 해답은 인터뷰 중 들려온 밥솥 소리에 있었다. ‘치치치찍~ 치치치찍.’ 사무실 한켠 부엌에선 밥솥이 돌아가고 있었다. 놀공발전소 직원 박은현 씨는 이곳을 소개하는 책 <노력금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창의력이 필요할 때마다 놀공은 밥을 먹는다. 밥을 함께 먹으면서 옆사람의 근황부터 연예계 가십까지 다양한 주제를 꺼내 전방위적으로 토론한다. 메뉴를 정해 계산하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이 창의적인 생각을 자극하는 요소가 된다.”

밥을 같이 먹는 것 자체가 아이디어를 샘솟게 하진 않지만, 이들은 밥을 함께 먹는 것을 즐거워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토론한다. 이 대표는 2010년 놀공발전소를 세우면서 ‘수평적인 대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고 했다. 직원 이름 뒤엔 직함 대신 ‘공’을 붙여 서로 부르게 했다. 예를 들어 이승택 대표는 ‘피터공’으로 불린다. 창의력은 정부 구호나 예산지원이 아닌 기업 문화로부터 만들어진다.

또 이 대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판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했다. 대학 때 미국으로 건너갔던 그는 온라인 게임 회사를 성공시켰지만, ‘다시 가슴 뛰는 일을 찾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은 기회의 나라다. 다들 똑같은 일과 똑같은 목표만 가지고 있어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나만의 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놀이이고, 놀이가 일인 놀공발전소의 다음 도전은 ‘파우스트’다. 이들의 사업인 게임에 인문학 등 예술적 깊이를 더하겠다는 도전이다. 지난해 놀공발전소가 정신건강박람회에서 선보인 ‘톨스토이가 묻습니다’라는 게임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고전 <안나 카레리나>의 내용을 토대로 질문을 만들어 참가자들이 ‘예’ 아니면 ‘아니오’로 응답하게 해 책 내용을 음미할 수 있게 했다.

이 기획은 독일문화원의 눈에 띄어, 문화원의 지원을 받아 괴테의 작품인 <파우스트>를 게임으로 전세계에 소개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데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 대표는 “모두가 창업을 해서 이상한 일을 하라는 것은 아니고, ‘이게 돈이 되나요’라는 시선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곳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글·사진 이완 기자 wani@hani.co.kr

놀공발전소

게임 등을 통해 직원 교육과 마케팅을 하는 회사. 회사 이름 ‘놀공’은 ‘놀면서 공부한다’가 아니라 ‘놀듯이 공부한다’라는 뜻이다. ‘노력금지’가 슬로건이다. 2010년 직원 5명으로 시작해, 올해 직원 11명 회사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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