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에서 일하다 비영리단체 활동가로 변신한 이상진·최호진·박성호씨(왼쪽부터). 이상진씨는 민간 컨설팅업체에서 일했으며 우리금융지주에서 임직원 혁신 전략을 수립하기도 했다. 최호진씨는 외국계 회사에서 10여년 동안 페인트를 칠하는 로봇팔 판매 영업을 했다. 박성호씨는 민간기업에서 무역과 해외 영업을 하다 공정무역 비영리단체로 직장을 옮겼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경제의 창] 더 나은 사회
이직 새내기 3명 ‘솔직 토크’
이직 새내기 3명 ‘솔직 토크’
“세상을 바꾸는데 영리·비영리 구분 지을 필요가 있나요?”
영리기업과 비영리단체 두 영역은 목적과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최근 두 영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혁신기금추진단의 이상진(38) 단장, 희망제작소 최호진(40) 선임연구원, 아름다운커피 박성호(32) 매니저 역시 각자 민간기업에서 경력을 쌓아오다 지난해 비영리단체로 자리를 옮겼다. 모두 입사 1년 미만의 ‘새내기’들이다. 지난 1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이들을 만나 비영리로 간 이유를 물었다.
우리 사회 변화에 기여하고 싶었다
급여 크게 줄었지만 ‘더불어’ 의미
일처리 느려도 공감·소통 우선 -왜 비영리로 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상진(이) “사회혁신기금단에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하다 지난해 12월부터 함께하게 되었다. 사회적 가치에 비전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 성장보다는 복지나 협력과 같은 키워드들에 무게가 더 실릴 것 같다. 사회 혁신까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최호진(최) “개인적으로 고령화와 저출산에 관심이 많다.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내게도 올 현상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관련 단체에 후원하는 것 정도로 내가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내가 가진 것을 문제 해결에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희망제작소 시니어사회공헌센터를 알게 되었다.” 박성호(박) “무역 파트 업무를 하면서 점점 이익 분배 구조에 회의가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공정무역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아름다운커피와 연이 닿았다.” -비영리로 옮기면 아무래도 급여가 줄어들 것 같다. 어려움은 없나? 최 “영리기업에서의 급여와는 꽤 차이가 있다. 솔직히 첫 급여 명세서에 찍힌 숫자를 보니 실감이 나긴 하더라. 영리기업에서 흔히 하는 말로 ‘통장에 찍힌 숫자가 너의 가치’라고 하지 않나. 하지만 그 돈이 아깝지 않다. 나는 지금 ‘스스로’ ‘같이’의 문화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료라 생각한다.” 이 “오히려 아내가 나를 독려해주었다. 심지어 나는 지금 월급이 없다. 내가 있는 사회혁신기금추진단은 사회적 기업가들이 생태계 조성을 위해 풀뿌리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직 급여를 받을 만큼 여유가 있지 않다. 그럼에도 함께하게 된 것은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위해 모인 마음들에 나도 보태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 “처음에는 부모님이 약간 걱정을 하시긴 했다. 물론 돈은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진정으로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 생각한다. 조금 불편해도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비영리에 와서 보람을 느낀 사례가 있나? 최 “일에서 오는 보람이 크다. 희망제작소에서는 40살부터를 은퇴 이후 적극적으로 취미나 봉사 활동을 하는 액티브 시니어에 포함시킨다. 나 스스로 또 하나의 액티브 시니어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영리기업에 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네트워크 하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박 “얼마 전 네팔의 커피 산지를 개발하면서 생산자를 고려해 생산 단가를 책정했다. 실제로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구나’ 하며 놀랄 때가 많다. 네트워크에 대한 얘기에도 공감한다. 내가 일반기업에 있었다면 다른 나라 대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겠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날 때도 배경보다 사람 그 자체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인상 깊었던 점은? 박 “회의 때 모든 이의 의견을 수렴하고 회의록으로 정리해 다시 모두에게 공개하는 것이 놀라웠다. 영리에서는 빠르게 일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비영리는 느려도 공감과 소통을 전제로 한다.” 최 “영리가 수직적 구조라면 비영리는 수평적 구조다. 영리에서는 상급자가 방향을 정하면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책임도 제한적이다. 그런데 비영리로 오니 숨어있을 곳이 없다. 회의 때 얘기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나를 기다린다. 내 목소리에 책임이 생긴다.” -영리와 비영리의 차이로 인해 어려운 점은 없나? 최 “하는 일의 특성상 성과를 수치로 측정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러다 보니 업무의 성과 측정이나 그에 따른 보상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리기업처럼 물질적인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다른 형태의 보상이 있을 것이다. 비영리에는 변화와 혁신에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합리적인 틀과 결합하게 된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것이라 생각한다.” 이 “사람들에게 동기와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비영리에서는 이러한 용어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의 비영리 벤처캐피털인 어큐먼펀드도 자체적인 성과 분석틀을 가지고 있다. 합리적인 운영체계가 필요하다.” -사회적 가치를 좇아 비영리로 왔다. 계속 비영리에서 일할 생각인가? 박 “대학 재학 중에는 방학마다 아프리카에서 봉사를 했다. 탄자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어린아이가 물을 달라고 구걸하는데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아이는 돈을 달라는 게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것조차 없었던 거다. 영리·비영리의 이분법적 구분보다는 ‘다 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최 “비영리여서 왔다기보다는 내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접점이 이곳에 더 많다.” 이 “비영리에서 적은 자본으로 변화를 만드는 것도, 영리에서 비교적 큰 자본으로 사회에 임팩트를 만드는 것 모두 의미가 있다. 만약 두 영역이 상대 영역의 일을 하려 한다면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두 영역을 이어 사회에 더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나의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추구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영역이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정리 양은영 선임연구원 ey.yang@hani.co.kr
급여 크게 줄었지만 ‘더불어’ 의미
일처리 느려도 공감·소통 우선 -왜 비영리로 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상진(이) “사회혁신기금단에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하다 지난해 12월부터 함께하게 되었다. 사회적 가치에 비전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 성장보다는 복지나 협력과 같은 키워드들에 무게가 더 실릴 것 같다. 사회 혁신까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최호진(최) “개인적으로 고령화와 저출산에 관심이 많다.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내게도 올 현상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관련 단체에 후원하는 것 정도로 내가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내가 가진 것을 문제 해결에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희망제작소 시니어사회공헌센터를 알게 되었다.” 박성호(박) “무역 파트 업무를 하면서 점점 이익 분배 구조에 회의가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공정무역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아름다운커피와 연이 닿았다.” -비영리로 옮기면 아무래도 급여가 줄어들 것 같다. 어려움은 없나? 최 “영리기업에서의 급여와는 꽤 차이가 있다. 솔직히 첫 급여 명세서에 찍힌 숫자를 보니 실감이 나긴 하더라. 영리기업에서 흔히 하는 말로 ‘통장에 찍힌 숫자가 너의 가치’라고 하지 않나. 하지만 그 돈이 아깝지 않다. 나는 지금 ‘스스로’ ‘같이’의 문화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료라 생각한다.” 이 “오히려 아내가 나를 독려해주었다. 심지어 나는 지금 월급이 없다. 내가 있는 사회혁신기금추진단은 사회적 기업가들이 생태계 조성을 위해 풀뿌리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직 급여를 받을 만큼 여유가 있지 않다. 그럼에도 함께하게 된 것은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위해 모인 마음들에 나도 보태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 “처음에는 부모님이 약간 걱정을 하시긴 했다. 물론 돈은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진정으로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 생각한다. 조금 불편해도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비영리에 와서 보람을 느낀 사례가 있나? 최 “일에서 오는 보람이 크다. 희망제작소에서는 40살부터를 은퇴 이후 적극적으로 취미나 봉사 활동을 하는 액티브 시니어에 포함시킨다. 나 스스로 또 하나의 액티브 시니어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영리기업에 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네트워크 하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박 “얼마 전 네팔의 커피 산지를 개발하면서 생산자를 고려해 생산 단가를 책정했다. 실제로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구나’ 하며 놀랄 때가 많다. 네트워크에 대한 얘기에도 공감한다. 내가 일반기업에 있었다면 다른 나라 대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겠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날 때도 배경보다 사람 그 자체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인상 깊었던 점은? 박 “회의 때 모든 이의 의견을 수렴하고 회의록으로 정리해 다시 모두에게 공개하는 것이 놀라웠다. 영리에서는 빠르게 일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비영리는 느려도 공감과 소통을 전제로 한다.” 최 “영리가 수직적 구조라면 비영리는 수평적 구조다. 영리에서는 상급자가 방향을 정하면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책임도 제한적이다. 그런데 비영리로 오니 숨어있을 곳이 없다. 회의 때 얘기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나를 기다린다. 내 목소리에 책임이 생긴다.” -영리와 비영리의 차이로 인해 어려운 점은 없나? 최 “하는 일의 특성상 성과를 수치로 측정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러다 보니 업무의 성과 측정이나 그에 따른 보상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리기업처럼 물질적인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다른 형태의 보상이 있을 것이다. 비영리에는 변화와 혁신에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합리적인 틀과 결합하게 된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것이라 생각한다.” 이 “사람들에게 동기와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비영리에서는 이러한 용어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의 비영리 벤처캐피털인 어큐먼펀드도 자체적인 성과 분석틀을 가지고 있다. 합리적인 운영체계가 필요하다.” -사회적 가치를 좇아 비영리로 왔다. 계속 비영리에서 일할 생각인가? 박 “대학 재학 중에는 방학마다 아프리카에서 봉사를 했다. 탄자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어린아이가 물을 달라고 구걸하는데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아이는 돈을 달라는 게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것조차 없었던 거다. 영리·비영리의 이분법적 구분보다는 ‘다 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최 “비영리여서 왔다기보다는 내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접점이 이곳에 더 많다.” 이 “비영리에서 적은 자본으로 변화를 만드는 것도, 영리에서 비교적 큰 자본으로 사회에 임팩트를 만드는 것 모두 의미가 있다. 만약 두 영역이 상대 영역의 일을 하려 한다면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두 영역을 이어 사회에 더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나의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추구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영역이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정리 양은영 선임연구원 ey.y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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