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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직장·취업

퇴근시간 전등·PC 끄고 밤엔 “카톡 지시 금지”

등록 2016-06-23 17:15수정 2016-06-23 20:24

직장인들이 밤늦게까지 환하게 불을 켜놓고 일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
직장인들이 밤늦게까지 환하게 불을 켜놓고 일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
밤 10시 이후 업무 지시하면 불이익
사무실 전등 끄며 ‘칼퇴근’ 재촉
‘아직 남의 나라 얘기’인 곳들도 많아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아무개씨의 스마트폰은 퇴근 뒤에도 ‘카톡’ 알림 메시지로 시끄럽다. 본부장과 부장이 만든 메신저 단체 대화방 때문이다. 본부장이 시도 때도 없이 업무 메시지를 올리면 “네, 알겠습니다” 식으로 수십명의 답변이 줄줄 이어진다. 곧이어 부장과 팀원이 모인 대화방에서는 더 자세한 업무 지시가 이어진다. 김씨는 “업무 지시가 아니더라도 상사가 올린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을 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밤낮 잊은 상사의 메신저는 야근을 부르고, 일거리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기기 회선을 타고 집이나 사적인 약속 장소로 배달된다. 메신저를 통한 근무시간 외 업무 지시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최근 “퇴근 후 문자나 카카오톡 등으로 업무 지시를 하면 안된다”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기업들도 인건비 절감과 직원 복지를 위해 부서장들에게 퇴근 후 불필요한 업무 지시를 못하게 ‘엄포’를 놓거나, 사무실 전등을 꺼버리는 고육책을 내놓고 있다.

‘연장근무와의 전쟁’을 하는 업체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엘지유플러스(LGU+)다. 권영수 엘지유플러스 부회장은 지난달 직원들에게 ‘즐거운 직장 및 건강한 조직문화 만들기’ 지침을 내리면서 “밤 10시 이후와 휴일에 스마트폰 메신저로 업무 지시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권 부회장은 “이를 어긴 부서 책임자는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까지 했다. 엘지유플러스 관계자는 “권 부회장이 밤 10시라고 했지만, 취지는 퇴근 이후 스마트폰 메신저로 일과 관련된 문자를 주고받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도 1월부터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면서 인사 담당자들이 ‘칼퇴근’을 강조하고 있다. A타입(오전 8시~오후 5시), B타입(오전 9시~오후 6시), C타입(오전 10시~오후 7시)으로 근무 유형을 나눈 뒤, 이를 각자 사무실 책상에 적어두게 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푸드 등 계열사에서는 제도 도입 초기에 인사팀이 퇴근시간에 돌아다니면서 정시 퇴근을 종용했다. 지금은 팀장들이 매달 직원들의 퇴근시간을 기록해 제출한다”고 말했다.

퇴근시간이 되면 무조건 직원들 등을 떠미는 ‘셧다운’(Shut down)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도 여럿이다. 식품업체 오뚜기는 오래전부터 미리 연장근무를 신청한 이들을 제외하고 오후 7시에 사무실 조명을 모두 끄고 있다. 에스케이씨앤씨(SKC&C)도 오후 6시가 되면 사내방송으로 음악이 흘러나와 퇴근을 재촉한다. 저녁 8시가 넘으면 사무실 전등이 모두 자동으로 꺼진다. 이 업체 관계자는 “일은 근무시간에 집중해서 하고 퇴근 뒤에는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휴식을 취하자는 문화가 자리잡혔다. 퇴근 뒤 메신저로 일 얘기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씨제이(CJ)그룹도 매주 수요일을 ‘패밀리 데이’로 정하고 오후 5시30분께 사무실 전등을 꺼 직원들의 퇴근을 재촉한다.

하지만 연장근무 방지책의 사각지대도 있다. 롯데쇼핑은 퇴근시간이 지나고 20분 뒤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는 ‘피시(PC) 오프제’를 운영한다. 그 뒤에도 피시를 쓰려면 연장근무 신청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 부담을 느끼는 상사들 때문에 컴퓨터의 시간 설정을 바꿔 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같은 지침을 둔 기업들은 아직 일부에 그친다. 주요 대기업들은 ‘업무시간 안에 일과를 완료하고 정시퇴근을 생활화하라’는 지침을 수시로 내리지만, 상급자의 업무시간 외 지시를 규제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 대기업 과장은 “회사에서는 점심시간 잘 지키라며 매번 확인에 나서는데, 그럴 거면 퇴근시간도 제대로 확인해줘야 하지 않냐”고 말했다.

김성환 김재섭 유신재 임지선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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