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기사를 소개합니다 | 기자들의 브이로그형 현장 브리핑 #20
김광수 <한겨레> 전국1팀 기자
김광수 <한겨레> 전국1팀 기자
3일 방송된 ‘한겨레 라이브’ 코너 ‘내(일) 기사를 소개합니다’에서는 김광수 <한겨레> 전국1팀 기자가 나와 전두환씨가 ‘1979년 10월26일’ 직전에 부마항쟁 진압 계획을 세웠다는 의혹을 소개했다. 김현정 피디 hope0219@hani.co.kr
내기소: 김광수 기자편 전문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산을 담당하고 있는 김광수 기자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할 기사는 전두환과 부마민주항쟁입니다. 부마민주항쟁은 잘 알다시피 1979년도 10월16일 부산대 학생들이 박정희 군사유신 독재정권을 타도하자며 거리로 쏟아져나오면서 시작됐는데요. 시민들이 가세하게 됐고 급기야 인근 경남 마산과 창원으로 번져서 10월18일날 0시께 부산 전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고요. 이틀 뒤에는 마산과 창원에 위수령이 발동돼서 군인들이 시내에 진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나왔습니다. 바로 육군 군수 사령부가 1981년도 6월에 펴냈던 <군수사사>라는 자료입니다. 이 자료에 흥미로운 내용이 나오는데요. 이날, 10월18일날, 12시20분경, 낮입니다. 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이 부산의 계엄사령부를 방문해서 당시 박찬긍 계엄사령관 등과 함께 작전 회의를 열었고 '어떻게 데모를 진압할 것인가' 이런 작전 계획을 짰습니다. 그리고 이 계획에 따라서 전두환 장군은 상경을 했고요. 상경한 뒤에, 그날 오후에 실행이 됩니다. 군대가 진주하게 되고, 군인들이 상주하게 되고 대규모로 이제 시위대를 검거하게 되고 그러면서 군사재판에 회부하게 됩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여기에 대해서 두가지 해석이 나옵니다.
첫번째는 '전두환 씨가 실질적으로 부마민주항쟁을 진압한 주범이다' 이런 시각이 하나 있고요. 또 다른 시각은 '그렇지 않다. 전두환 씨가 형식적인 회의를 열었을 뿐 실질적인 것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지휘를 했다' 이런 시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보안사령관이라는 직책은 군 지휘 계통에 직접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김선미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위원은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전두환 씨가 같은 하나회 멤버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서 10월18일 부산으로 와서 회의를 열었다고 본다."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전두환 씨가 실질적인 부마민주항쟁 진압에 주도를 했다면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광주민주항쟁을 진압했던 그 전두환 씨가 7~8개월 전에 부마민주항쟁까지도 실질적으로 진압을 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이후에 학계와 자료를 통해서 더 밝혀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기소 7월3일 김광수 기자편. 한겨레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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