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신비’ 깨뜨리고 지다
1960년대 미국 여성운동의 싹을 틔운 여성운동가 베티 프리단이 생일인 4일 심장마비로 워싱턴 집에서 숨졌다. 향년 85세. 1921년 미국 일리노이주 피어리어에서 태어난 그는 63년 여성학의 고전이 된 책 <여성의 신비>를 써서 현대 여성운동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그가 책 제목으로 쓴 ‘여성의 신비’란 각종 매체, 광고, 교육자, 사회학자들이 작위적으로 만들어 낸 현대식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를 가리킨다. 프리단은 교외에 예쁜 집을 짓고 남편과 아이 뒷바라지에 생애를 바치는 미국의 중산층 주부들이 남편의 곁에 누워 “이게 정말 행복일까?”라고 무기력하게 회의하는 것을 ‘이름 없는 병’이라고 불렀다. 안락한 미국 중산층 가정을 ‘포로수용소’라고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 역시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주부였다. 42년 스미스대학을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중산층 주부로 살았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고 여성 문제에 눈을 뜨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40대 늦깎이로 독학에 뛰어든 그는 아이들과 집안 살림을 파출부에 맡겨둔 채 도서관을 찾았다. 각종 매체의 기사와 광고 조사, 전업주부 결혼생활 추적 등 방대한 양의 취재와 자료 조사 등 5년 가량의 연구를 통해 <여성의 신비>를 완성한 뒤에는 판매 260만부를 넘기는 스테디셀러 지은이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여성의 신비>는 막 결혼한 신부의 40%가 10대이던 1960년대 미국 여성상에 대한 최초의 실증적·성인지적 기록이었다. 중산층 주부서 40대에 페미니스트로
성평등적 법·제도 개선 불씨 지펴
‘슈퍼우먼 콤플렉스’ 부추겨 한계 지적도 성평등적 법·제도 개선의 불씨도 지폈다. 미국 최대 여성운동단체인 전미여성기구(NOW), 전미낙태권행동(NARA), 전미여성정치회의(NWP) 등의 여성 운동 단체를 만들어 정치적인 활동에도 나섰다. 낙태, 출산휴가권, 직장에서의 성평등 같은 운동을 펼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의와 연설로 여성의 자각과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프리단의 문제제기는 성평등적 교육 확대와 직장 내 법·제도 개선으로까지 이어져 여성의 사회진출을 늘이는 데 이바지했다. 여성 운동의 선구자였지만 프리단의 페미니즘 운동에는 일정한 한계도 있었다. 프리단은 <미즈>(MS)를 창립한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끄나풀이며 미모를 무기로 여성운동을 독식하는 스타 페미니스트’라 공격했고, 끝까지 레즈비어니즘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또 여성들에게 끝까지 가정을 지키라며 수퍼우먼 콤플렉스를 부추긴 탓에 ‘부르주아 페미니스트’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나이가 든 뒤에는 건강과 젊음에 집착한 나머지 여성주의를 등지고 노인 문제를 다룬 책 <노년의 샘>(1993)을 쓰면서 죽음에 대한 혐오, 젊게 사는 비법을 전파하는 등 진폭 큰 삶을 살았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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