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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 언론자유 시험대…‘페일린-NYT’ 1차전 승부수 ‘실제적 악의’

등록 2022-02-15 13:21수정 2022-02-15 13:35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
“뉴욕타임스가 명예훼손” 소송
1심 “실제적 악의 입증 안 돼”
1964년 기념비적 대법 판례 고수
보수 우위 현 대법의 태도 주목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뉴욕 타임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기각 방침을 접한 뒤 법원을 나서면서 기자들에게 입장을 말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뉴욕 타임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기각 방침을 접한 뒤 법원을 나서면서 기자들에게 입장을 말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2008년 미국 대선에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섰던 세라 페일린이 <뉴욕 타임스>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냈으나 패소에 직면했다. 미국의 언론 자유와 관련해 주목을 끈 이 사건 1차전에서 ‘언론 자유’가 승리한 셈이다.

뉴욕 로우어 맨해튼 연방지법의 제드 레이코프 판사는 14일 페일린 쪽이 <뉴욕 타임스> 사설의 “실제적 악의”(actual malice)를 입증하지 못했다며 소송을 기각하겠다고 밝혔다. <에이피>(AP) 통신은 레이코프 판사가 “법은 ‘실제적 악의’에 대해 매우 높은 기준을 설정했다”며 “이번 사건은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페일린은 2017년 <뉴욕 타임스>가 허위 사실을 사설에 써 정치 평론가 및 컨설턴트로서의 명성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 이 사설은 2011년 괴한이 쏜 총탄에 머리를 맞은 개브리엘 기퍼즈 하원의원 사례를 들면서, 페일린의 정치행동위원회가 기퍼즈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 지역구 20곳 위에 표적을 겨누는 십자선을 표시한 지도를 유포한 것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기퍼즈 의원이 중태에 빠지고 6명이 사망한 사건과 “정치적 선동과의 연관성이 분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수사 결과는 총격범은 정신적 문제가 있었으며 페일린 쪽의 선동에 자극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신문은 잘못된 사실관계가 사설에 들어갔다고 해명했고, 재판에서도 “명백한 착오”라고 인정했다.

허위 사실로 페일린의 명예가 깎인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도 <뉴욕 타임스>가 법적 책임을 면한 것은 바로 레이코프 판사가 말한 ‘실제적 악의’라는 기준 때문이다. 공인의 활동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더라도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거나, 사실인지 아닌지를 분별없이 무시하면서” 한 보도가 아니라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레이코프 판사는 “페일린이 소송을 제기한 게 놀랍지는 않다”며, <뉴욕 타임스> 사설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실제적 악의’라는 기준을 제시한 1964년 연방대법원의 기념비적 판결의 주인공이 바로 <뉴욕 타임스>라는 점도 흥미롭다. 연방대법원은 민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서 킹 목사에 관한 전면광고가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경찰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제기된 ‘<뉴욕 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에서 공적 사안에 관해서는 폭넓은 언론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며 신문사 손을 들어줬다.

페일린은 법정에 나와 이번 소송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뉴욕 타임스>가 ‘실제적 악의’를 갖고 사설을 썼다는 점이 인정되지 않으면 2심부터는 1964년 판례를 깨는 전략을 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연방대법원에도 이 판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있기에 사건의 귀추는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페일린이 제기한 사건은 <뉴욕 타임스>를 상대로 미국에서 거의 20년 만에 제기된 명예 훼손을 이유로 한 소송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페일린은 알래스카 주지사를 하던 2008년 대선에 나선 존 매케인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가 돼 처음에는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자질 부족 논란 속에 인기가 시들해졌고, 매케인-페일린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조 바이든(현 대통령)에게 크게 패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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