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주재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미국대사(왼쪽부터), 조현 한국대사, 이시카네 기미히로 일본대사가 25일 비공개회의 후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유엔본부/AP 연합뉴스
북한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에 대응해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강력한 추가 제재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중 전략 경쟁 격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미국과 중·러 양국의 관계가 크게 악화된 상황이어서, 원하는 협력을 끌어내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25일(현지시각) 공개리에 소집된 안보리 회의에서 “북한의 거듭된 안보리 결의 위반에 직면해 가만있을 수 없다”며 “제재를 갱신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7형을 발사하자, 이런 “지독하고 부당한 긴장 고조 행위”에 맞서기 위해 다른 안보리 이사국 14개국에 제재 강화를 논의하자고 촉구한 것이다. 조현 주유엔 한국대사는 “새 결의안을 추진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지지를 표명한다”고 말했고, 영국 등도 추가 제재에 찬동 의사를 밝혔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안보리 이사회가 공개리에 열린 것은 2019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미국은 이날 회의에서 ‘화성-15형’ 시험발사에 대응한 안보리의 마지막 대북 결의인 ‘안보리 결의 2397호’에 따라 자동적으로 추가 제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12월 말 채택된 이 결의에 따라 안보리는 대북 원유 공급 상한을 연간 400만배럴, 정제유는 50만배럴로 축소한 바 있다. 그와 함께 “북한이 또 핵실험을 하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안보리가 유류 수출을 추가 제한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결정한다”는 ‘유류 트리거(방아쇠)’ 조항을 뒀다. 토머스그린필드 미국대사는 “지금 일어난 일이 정확히 그것”이라며 “행동을 취할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화성-14형과 화성-15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잇따라 발사하고, 6차 핵실험을 감행했던 2017년과 달리 미국에 협력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는 “누구도 긴장 고조로 이어질 수 있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은 북한의 정당한 요구를 계속 무시하지 말고 대화의 조기 재개를 위한 길을 깔기 위해 매력적 제안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안나 옙스티그네예바 주유엔 러시아 부대사도 제재 강화는 “용납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인도적 문제들로 북한 주민들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두 나라는 북한의 도발이 도를 넘으며 북-미 간에 험한 말이 오갔던 2017년엔 안보리 제재에 동의한 뒤, 북한이 2018년 4월 대남·대미 대화에 나서면서 핵·미사일 시험을 유예(모라토리엄)하자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해왔다.
중·러가 이날 명시적인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안보리 차원의 추가 제재는 이뤄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중·러가 이전과 달리 ‘레드 라인’을 넘은 북한의 행동을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지난 5년간 미국과 안보리의 주요 상임 이사국인 중·러의 틈이 벌어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3월 국가안보전략(NSS) 지침에 중국을 “안정되고 개방적인 국제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경쟁자”로 지목한 뒤 쿼드·오커스 등을 통해 대중 포위를 강화하는 중이고,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의 관계는 파탄에 이른 상황이다.
미국 등은 안보리 차원의 언론 성명도 추진했지만, 중·러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 때문에 한국, 미국, 일본 등의 주유엔 대사들은 회의 뒤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가장 강력한 언어로 규탄한다”고 밝히는 데 그쳐야 했다. 이들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계속 진전시키는 가운데 안보리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며 중·러를 비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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