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 아이오와주 디모인 근처의 에탄올 생산시설에서 가공 과정에 있는 옥수수 더미를 배경으로 연설하고 있다. 디모인/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일 옥수수 주산지인 아이오와주의 주도 디모인으로 달려갔다. 대형 바이오에탄올 생산시설에 들른 그는 휘발유에 섞는 에탄올에 대한 규제를 풀겠다며 “갤런(약 3.79ℓ)당 10센트(약 123원)가 싸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 대통령이 단돈 10센트 인하 효과를 홍보하려고 먼 길에 나선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날 미국 노동부는 3월 소비자물가지수 연간 상승률이 40년3개월 만의 최고인 8.5%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오름폭에서 휘발유 몫이 절반이 넘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 권한 범위 안에서 행정명령을 통해 (휘발유) 가격을 낮추려고 모든 것을 하고 있다”며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 않겠지만 일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옥수수 등 식물로 만드는 에탄올을 15% 함유한 휘발유의 여름철(6월1일~9월15일) 판매 금지를 긴급 유예한다고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에서 파는 휘발유에는 순수 휘발유보다 싼 에탄올이 10%(E10) 함유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에탄올을 15%(E15) 함유한 휘발유는 더운 때 판매가 금지돼왔다. 순수 휘발유보다 온실가스를 24% 더 내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조처는 실질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인 제스처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의 10만곳 넘는 주유소들 중 에탄올 15% 함유 휘발유는 2300여곳만 팔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일만 해도 3월 실업률이 3.6%로 떨어지자, 어떤 대통령도 15개월 만에 이 정도 실업률 하락(취임 당시 6.4%)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경제 치적을 자랑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오름세를 탄 휘발유 가격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충격으로 지난달 중순 최고치를 찍으며 유권자들의 불만을 돋우고 있다. 미국인들에게는 실업률 하락보다 물가 급등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지난달 말 <에이피>(AP) 통신과 시카고대 공공정책연구소가 한 여론조사에서 65%가 대통령이 경제를 잘못 운용하고 있다고 했다.
평가가 어떻든 바이든 대통령은 뛰는 가격을 잡으려고 동분서주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증산을 요구하고, 미국이 합법 정부로도 인정하지 않는 주요 산유국 베네수엘라에 사절단을 보냈다. 이런 노력이 먹히지 않자 5월부터 하루 100만배럴씩 6개월간 총 1억8천만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겠다며 역대 최대 석유시장 개입을 선언했다. 국유지 채굴을 허가받고도 석유를 생산하지 않는 기업에 벌금 부과를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일부 성과도 있다. 3월 말 갤런당 4달러23센트로 1년 전보다 47.4% 오른 상태였던 보통휘발유 평균가는 2주 만에 13센트 떨어졌다. 비축유 방출 발표의 영향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리며 억울하다는 태도도 내비치고 있다. 그는 이날도 “푸틴의 가격 상승”이라는 말을 썼다. 트위터로는 “인상 책임의 70%는 푸틴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석유 금수 등 대러 압박은 대체로 지지하면서도 지금 같은 높은 가격은 참기 어렵다는 태도다. 자동차 사용이 많은 미국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휘발유값에 민감하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도는 10일 발표된 <시비에스>(CBS)-유고브 조사에서 42%로 취임 이래 최저였다.
휘발유값 안정 노력은 공약 위반 시비도 부르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강력 대응을 부르짖어온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석유업체들에 증산을 종용하는 등 태도가 돌변했다. 미네소타대의 제이슨 힐 교수는 “옥수수 에탄올은 휘발유보다 온실가스를 더 뿜는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변화 대처 목표와 사실상 반대로 가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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