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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여성들 피를 손에 묻히게 될 것”…‘란셋’, 미 대법원 맹폭

등록 2022-05-17 17:44수정 2022-05-17 17:56

세계적 의학전문지 <란셋> 최근호·누리집
사설 통해 ‘로 대 웨이드’ 판결 뒤집기 시도 비판
미국 연방대법원의 임신중지권 폐지 판결 방침이 알려진 지난 3일 위스콘신주 매디슨시 시민들이 이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의 임신중지권 폐지 판결 방침이 알려진 지난 3일 위스콘신주 매디슨시 시민들이 이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판결문 초안을 확정한다면 여성들은 죽을 것이다.”

세계적 의학전문지 <란셋>(Lancet)의 누리집과 최근호(399호) 표지를 장식한 글의 첫 줄이다.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내용이 담긴 미국 연방대법원의 초안이 유출되면서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세계적 의학전문지가 “연방대법원이 안전하게 낙태할 권리를 부인한다면, 여성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법적으로 지지하는 꼴이 될 것”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란셋>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이 방어돼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누리집 첫 화면과 최근호 표지에는 사설 내용의 일부인 “‘로 대 웨이드 판결’을 깨는 쪽으로 투표하는 법관은 임신중지를 멈추게 하는 데에 결코 성공할 수 없고, 그저 안전한 임신중지를 끝장내는 데에만 성공할 것이다. (판결문 초안을 작성한)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과 그의 지지자들은 여성들의 피를 손에 묻히게 될 것”이라는 강한 비판의 메시지를 실었다.

앞서 지난 2일(현지시각)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연방대법원이 1973년 ‘로 대 웨이드’ 사건 판례를 뒤집기로 했다며 98쪽짜리 다수의견 판결문 초안 전문을 공개했다. ‘로 대 웨이드’ 판례는 ‘임신중지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사생활의 권리 침해’라며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판결이다. 이 판결에 따라 미국 여성은 임신 6개월까지 스스로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의학학술지 &lt;란셋&gt;(Lancet)이 누리집과 최근호(399호) 표지에 “미국 연방대법원이 판결문 초안을 확정한다면 여성들은 죽을 것이다.”라는 사설 속 문장을 적었다. 사진 &lt;란셋&gt; 누리집 갈무리
세계적인 의학학술지 <란셋>(Lancet)이 누리집과 최근호(399호) 표지에 “미국 연방대법원이 판결문 초안을 확정한다면 여성들은 죽을 것이다.”라는 사설 속 문장을 적었다. 사진 <란셋> 누리집 갈무리

<란셋>은 공개된 판결문 초안을 두고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이 21세기 여성의 현실을 모르는 18세기 문서에 결정의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견 초안에서 대법관들은 “헌법은 임신중지를 언급하지 않았다”며 임신중지권은 헌법 조항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학술지는 사설에서 “법은 이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도전과 곤경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며 “대법원은 오늘날 임신중지를 선택하는 여성들의 건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의도하지 않은 임신과 임신중지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짚었다. 사설은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약 1억2천만건의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5분의 3은 임신중지로 이어지고, 그 중 55%만이 안전한 임신중지를 한 사례로 집계된다고 전했다. 사설은 “법이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면 여성들의 생명은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임신중지를 둘러싼 인종적, 계급적 문제도 언급됐다. 이 학술지는 “미국에서 흑인 여성의 의도하지 않은 임신율은 백인 여성의 두배”라며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로 흑인 산모가 사망하는 비율은 백인 여성보다 거의 세배나 높다. 이런 인종적, 계급적 격차를 고려하면 더 이상의 법적 장벽이 아니라 긴급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여성의 행복과 성평등을 위한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란셋>은 법원이 여성에 대한 국가의 통제에 앞장서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 학술지는 “소수의 판사 집단이 여성과 가족, 그리고 이들을 보호하도록 돼 있는 지역사회를 해치는 것이 허용될 때 미국은 어떤 사회가 될 것인가”라며 “법원이 안전하게 낙태할 권리를 부인한다면 이는 여성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법적으로 지지하는 꼴이 될 것이고, 여성의 건강과 권리 보장에 장애물이 될 것이며,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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