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지난해 12월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달 말께 중동 지역 동맹국 정상들과의 회동을 추진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만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빈살만 왕세자의 관계는 ‘동맹 같지 않은 동맹’이라고 할 정도로 냉각기를 겪어왔다.
<로이터>는 미국 관리들이 바이든 대통령이 이달 말 스페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곧바로 중동으로 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의 리야드에서 열리는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했다. 걸프협력회의에는 사우디·바레인·쿠웨이트·오만·카타르·아랍에미리트연합이 참여하고 있다. 행사를 미국과 걸프협력회의 차원의 정상회의로 만들어 바이든 대통령과 빈살만 왕세자가 조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계획이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미-사우디 관계는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 석유 증산, 예멘 내전, 이란 핵협상을 놓고 갈등이 이어졌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는데도 사우디는 동맹인 미국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석유 생산을 놓고 러시아와 협조하는 모습마저 보였다. 또 사우디가 석유 결제 대금으로 중국의 위안화를 인정하는 것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와 미국 쪽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빈살만 왕세자가 바이든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거절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두 지도자의 개인적 관계를 틀어지게 만든 요소는 2018년 터키에서 발생한 사우디 출신의 비판적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 사건이다. 대외 관계에서도 인권을 강조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빈살만 왕세자가 유력한 배후로 지목된 이 사건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현재 미국이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을 서두르게 만드는 가장 큰 동기는 고유가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산유국들의 증산을 통한 유가 안정이 시급하다. 지난달에도 미국 관리들이 사우디를 방문해 증산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4월에는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비밀리에 사우디를 찾아 빈살만 왕세자를 만났다. 이 만남에 대해 미국 정부 관계자는 “전보다는 분위기가 나아졌다”고 지난달 <월스트리트 저널>에 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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